변동불거(變動不居)

2025-12-08

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고대로부터 미술은 ‘끊임없이 변화’해왔지만, 이를 진보로 여기는 건 “그릇된 해석”이라고 경계했다. 대신 “미술사는 기술 숙련도의 진보가 아니라 관념과 필요의 변화에 관한 것”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변화는 곧 적응이다. 실상 변화의 압력은 미술만 아니라 인간 삶의 매 순간 모든 것에 마치 중력처럼 달라붙어 있다.

교수신문이 8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선정했다. 설문에 응한 전국 대학교수 776명 중 33.9%가 1위로 꼽았다고 한다. 공자가 ‘천하의 도’라 했던 <주역>에 해설을 단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말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며 변한다’는 의미다. 교수신문은 “한국 사회가 거센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며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대전환의 난세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묻는다.

과거 <주역>은 양반들의 고급 점괘 취미로도 여겨져왔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인간이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지 64갈래(64괘) 교훈을 통해 조언한 게 <주역>이다. 건곤 이진법이 원리지만, 이원론적 세계 너머를 통찰할 것을 요구하기에 수신의 성격도 강하다. 다산 정약용은 가장 중요한 책의 하나로 <주역사전>을 꼽으며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책”이라 했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

교수신문은 2023년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를 선정했다. <논어>의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비틀어 정치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결국 전직 대통령 윤석열은 이듬해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도량발호·跳梁跋扈) 파멸했다. ‘도량발호’는 비상계엄 직전 선정된 그해 사자성어였다. 이처럼 그 시대 집단지성이 모인 언어는 때로 예언이 되기도 한다.

‘역(易)’은 근본적으로 “변화의 법칙”이다. 그래서 <주역>을 읽는 교훈의 근본은 길한 것도 흉이 될 수 있고, 화도 복이 될 수 있다는 중용과 신중함이다. 천명을 안다는 건 어쩌면 별게 아닐지 모른다. 한계와 절제를 안다는 것, 그리고 절대 희망을 꺾지 않는 것. 그럴 때 미래를 보진 못해도 적응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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