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화려함의 그늘, ‘중소돌’에 기적을 허하라

2025-08-27

K팝 바람이 뜨겁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엄청난 흥행은 국경을 넘어 글로벌 문화 코드가 된 K팝의 위상을 보여준다. 26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핫100’에는 K팝 장르로 분류된 곡이 12곡이나 포함됐다. 바야흐로 K팝의 황금기가 도래한 걸까. 기대와 자부심에 설레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 잔치 분위기 속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기획사 중심의 K팝 산업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다. 올들어 ‘루미너스’ ‘슈퍼카인드’ ‘위클리’ ‘퍼플키스’ 등 중소기획사의 아이돌 그룹들이 잇따라 해체 결정을 하면서 위기의식이 커졌다. 중소기획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생태계라면 K팝의 경쟁력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케데헌’ 등 세계적인 인기지만

상위 몇 팀 독식하는 ‘압정’ 구조

다양성 해쳐 K팝 경쟁력 저하

중소 기획사 돕는 송캠프 필요

“작곡가도 대형 기획사 선호”

그 실태와 해법을 듣기 위해 지난 22일 연예기획사 어트랙트의 전홍준 대표를 만났다. 어트랙트는 2023년 4∼9월 25주 연속 빌보드 ‘핫100’에 자리하며 ‘중소돌의 기적’을 쓴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의 소속사다.

전 대표는 1993년 가수 유열의 매니저로 가요계에 발을 담근 이후 30년 넘게 대중음악 무대에서 생존전략을 찾아왔다. 그는 현재 가요계 상황에 대해 “압정 구조”라고 말했다. “예전엔 조용필부터 미사리 가수까지 공존하는 피라미드 구조였는데, 이젠 상위 몇 팀이 독식한다. 이대로 가면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르면, 중소기획사는 모든 게 불리하다. 앨범 두 개 이내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곧바로 도태된다. “노출 빈도에서부터 대형기획사와 비교가 안 된다. 스타일링에도 돈을 많이 못 쓰니 겉모습도 뭔가 촌스럽다. 팬들도 금방 없어질 것처럼 보이는 가수에겐 ‘덕질’을 안 시작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음악 비즈니스의 핵심인 음악이다. 유명 작곡가에게 곡을 받기 힘들다. 매출 10%가량을 저작권료로 받는 창작자 입장에선 팬덤이 탄탄한 대형기획사 아이돌 그룹에 곡을 주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다.

전 대표는 바로 이 단계에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 차원의 송캠프”가 그가 제안하는 아이디어다.

송캠프는 2009년 SM이 처음 도입한 집단 작곡 시스템으로, 송캠프를 통해 곡을 창작하고 수급하는 방식이 K팝 산업의 기본 공정이 됐다. 하이브·SM·JYP·YG 등 대형기획사들이 정기적으로 여는 송캠프에는 해외 각국의 창작자들이 모여든다.

“정부 주도로 송캠프를 열어 그곳에서 창작한 곡을 스포츠 선수 드래프트 방식으로 중소기획사들과 연결시켜 주면 좋겠다. 중소기획사가 독창적인 팀 컬러를 넣어 키우다 보면 또 기적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K팝 산업이 지금처럼 몇 개 대형기획사 중심으로 돌아가면 다양성이 떨어져 언젠간 식상해진다.”

피프티피프티를 ‘핫100’ 17위까지 올려놓은 ‘큐피드’는 스웨덴 신예 작곡가들의 작품이다. 그들과의 만남을 두고 그는 “천운”이라고 했다.

‘큐피드’의 성공 이면에는 “수업료 30억원 들여 얻은 교훈”도 있다. 2014년 ‘핫샷’이란 6인조 보이그룹을 데뷔시켰을 때 겪었던 시행착오를 뜻한다. 핫샷 멤버들은 연습생 시절 자발적으로 댄스 커버 영상 등을 SNS에 공개하며 팬들과 소통에 나섰다. 덕분에 데뷔 전 비공식 팬미팅에 2000명이나 모였다. 하지만 데뷔 후 전 대표가 멤버들에게 SNS를 금지시킨 것이 패착이 됐다. 결국 핫샷은 소속사 규모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마케팅 자원이 부족한 탓에 대중적 인지도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이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팬덤을 확장시킨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그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미디어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는 전 대표는 2022년 데뷔한 피프티피프티의 틱톡 마케팅 비용에 3000만원을 썼다. ‘큐피드’는 틱톡 챌린지를 통해 전 세계에 퍼졌다.

“중소 기획사 생존, 천운 이어져야”

‘큐피드’ 성공 이후의 우여곡절도 많다. 템퍼링(계약 만료 전 외부 사전접촉) 논란이 불거지며 회사가 휘청거렸다. 피프티피프티의 프로듀싱 용역을 맡았던 더기버스 안성일 대표가 배후로 지목됐다. 키나를 제외한 세 명이 떠난 피프티피프티는 새 멤버 네 명을 보강해 지난해 9월 5인조 걸그룹으로 시즌2를 맞았다. 새로운 피프티피프티는 ‘푸키’ ‘그래비티’ 등이 인기를 끌며 순항 중이다.

여기서 천 대표는 또 ‘천운’을 말했다. 피프티피프티 전 멤버들이 낸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계약을 해지하고 새 멤버를 뽑을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라는 것이다.

“만약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다면 회사는 못 버텼다. 중소기획사가 살아남으려면 천운도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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