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누가 문다혜에게 술을 권했나

2024-10-08

정책실장

송강 정철은 시조 <장진주사>에서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가지 꺾어 잔 수를 세어가며 한없이 먹세 그려"로 시작하여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찌 하리"로 끝나는 권주가를 블렀다. 누구보다 권력욕이 강했던 송강이 이백과 두보의 시를 모방하여 술로서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은 어떤 연유일까? 이처럼 선비들은 술을 마시면서 자연을 노래하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술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술이 힘든 노동 후 찾아오는 피로를 달래주기 때문이 아닐까. 백성들이 농사를 짓고 나서 새참과 농주를 먹는다는 기록이 많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홀로 농사를 짓는 것 보다 품앗이를 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술은 마을 사람들과 소통, 그리고 인간적인 사귐 등 사회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술자리는 단순히 술을 마시는 자리이기보다는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믿음을 갖게 해 주는 사교의 장(場)이다.

근대화의 시작과 더불어 사회가 급속하게 분화되면서 술 마시는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또한 술 마시는 이유도 다양하다. 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술 마시는 이유를 표현한 작품이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이다. 현진건은 이 작품에서 모순된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를 술로 표현했다. 어느 날 만취가 되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온 남편은 자신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부조리한 현재의 조선 사회라고 울분을 토로한 후 집을 나간다. 이 모습을 본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하면서 남편에게 술을 권한 사회를 탓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다혜가 이번에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되었다는 소식으로 국민여론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문재인 전대통령의 딸인 문다혜는 지난 5일 새벽 2시 51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바로 맞은편 도로에서 음주상태에서 현대 캐스퍼를 운전하다 차선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뒤따라오던 택시와 접촉 사고를 냈다. 당시 문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149로 나타났다.

그녀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지 않았다면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떤 이유로 술을 마셨는지는 개인 생활이다. 그녀가 전 남편인 서 모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둔 시점에서 낸 음주운전 사고는 대통령 시절 문재인의 발언이 부메랑이 되었다. 2018년 10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당시 문 대통령은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음주운전을 실수로 인식하는 문화를 끝내야 하며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특성상 초범이라도 처벌을 강화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문다혜에게 술을 권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녀는 문 전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그리고 본인을 압박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채용 의혹 수사로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 당한 상황을 '돌 맞은 개구리'와 '장수를 잡기 위해 말을 쏜다'라는 속담을 다른 표현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 개구리가 되어 보면요 머리는 빙빙 돌고, 몸은 늘어져가고 숨은 가늘어지는데도 '그 돌을 누가 던졌을까?' '왜 하필 내가 맞았을까?'라고 했다. 또한 그녀는 "그들에게 나는 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기 위해 즈려밟고 더럽혀져야 마땅한 말일 뿐"이라 올렸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돌에 맞은 개구리'에 빗댄 문다혜에 대해 "제가 보기에 이분은 억울한 개구리가 아니라 몰염치한 캥거루"라고 비난했다. 그녀에 대한 권 의원의 비판이 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그녀는 대통령의 딸로서 얻는 편익은 철저하게 누린 반면 사회적 관심으로 인한 엄청난 중압감에는 불편해 한다. 특히 본인과 가족들의 스캔들로 인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은 그녀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둬버렸다. 이러한 삶은 유명인사나 그 자녀들이 겪는 숙명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상황을 술 권하는 사회라고 탓하는 것 같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진보적 폭력이라는 말을 통해 폭력을 정당화했다. 문 정권은 박근혜 전대통령을 적폐몰이로 탄핵하면서 집권했기 때문에 어느 정부보다 도덕적 책무성이 높아야 된다. 그러나 문 정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스캔들은 차고 넘친다. 박근혜 정부를 겨눈 적폐몰이는 진보적 폭력이라고 정당화했다. 반면 자신들을 겨눈 검찰의 칼은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문다혜의 음주운전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문 전정권을 보면서 '가식'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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