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사업 주인공은 L3…예상 뒤집은 결정의 배경 [박수찬의 軍]

2025-10-03

3조원 규모의 항공통제기 2차 사업에서 미국 L3 해리스가 스웨덴 사브를 제치고 최종선정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30일 제171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항공통제기 2차 사업 기종선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미국 L3해리스의 신형 조기경보기 4대가 2032년까지 도입된다.

L3해리스의 국내 파트너로 참여했던 대한항공은 UH-60 성능개량 사업, 공군 전자전기 사업에 이어 또다시 성과를 거뒀다.

이번 사업에서 사브와 손을 잡았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대한항공에 3연패를 했다.

사내 연구개발 인력을 유지할 일감 문제 등에 직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T-50 훈련기 개발 이후 연구인력들이 다른 회사나 연구기관으로 옮겨갔던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만 방위사업청의 이번 결정이 방위력개선사업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3순위가 1순위로 올라섰다

방위사업청은 2023년 11월 첫 입찰공고를 냈다. 이때만 해도 미국 보잉 E-7A 도입 가능성이 높았다.

E-7A는 공군이 쓰고 있는 E-737 개량형으로, 성능 면에서 타 기종을 압도한다.

오랜 시간 임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의 편의성 등에선 L3해리스와 사브가 조기경보기 플랫폼으로 제안한 캐나다 봄바디어의 글로벌 6500 비즈니스 제트기와 차이가 크다는 평가다.

B737 여객기를 개조한 E-737은 승무원 휴게 공간 등이 있고 기체 내부가 쾌적하며 엔진 소음도 낮다.

지휘관이 모든 모니터를 한번에 둘러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배치를 갖춰 작전 효율성이 높다.

E-7A는 이같은 장점을 더욱 강화한 기종으로, E-737을 높이 평가하던 공군 내부에선 E-7A를 선호했다. 군과 방산업계에서도 E-7A 도입을 점쳤다. L3해리스의 수주를 예상하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2023년 11월과 지난해 2월 1·2차 입찰에선 제안서 평가 과정에서 보잉과 사브가 일부 필수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3차 입찰에선 필수조건이 충족돼 시험평가·협상이 이뤄졌으나 가격이 사업 예산을 초과해 유찰됐다. 지난 5월 4차 입찰에선 사브와 L3해리스가 후보가 됐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던 보잉은 제안 및 수락서(LOA) 등의 문제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군은 E-7A를 원했지만, 방위사업청의 최종 선택은 L3해리스였다.

L3해리스 기종은 캐나다 봄바디어 글로벌 6500 비즈니스 제트기에 이스라엘 엘타 EL/W-2085 레이더를 탑재한 형태다. 아직 실물은 없다. 하지만 레이더에 의한 연속적인 360도 공중감시능력을 강조해왔다.

레이더는 2006년 조기경보기(E-X) 사업 당시 이스라엘이 한국에 제안했고,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이탈리아가 걸프스트림 G550 비즈니스 제트기에 탑재하는 형태로 도입했다.

기체 사면에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장착, 최대 450㎞ 떨어진 표적을 탐지한다. 최대 1000개의 물체를 식별·추적한다. AESA 레이더를 사용해서 관제사가 보는 화면에선 2~4초마다 항적이 업데이트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브의 에리아이 레이더 탑재 글로벌아이는 아랍에미리트(UAE)가 운용중이고, 스웨덴이 도입을 결정했다. 프랑스·독일도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 실물과 판매 이력이 있는 셈이다.

UAE 버전은 글로벌6000 비즈니스 제트기를 썼지만, 최근에는 L3해리스처럼 글로벌6500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 공군 전자전기 플랫폼으로도 쓰일 글로벌6500은 터빈 진동 억제 기술이 적용된 롤스로이스 펄(Pearl) 15 엔진을 탑재했다. 기체 구조·임무장비에 전달되는 진동이 줄었고 객실 소음도 경쟁 기종 대비 2∼4㏈ 감소했다.

승무원 피로를 줄이고, 레이더를 오랜 시간 고출력으로 안정적인 가동이 가능하다. 최근 개발되는 정찰기 등의 특수목적군용기 플랫폼으로 채택되는 추세다.

플랫폼은 양측이 동일했고 실물과 판매 이력은 사브가 충분히 갖고 있었지만, 방위사업청은 L3해리스를 선택했다.

방위산업계에선 ‘신뢰도’가 영향을 미쳤을 거란 평가가 나온다.

제안서에 포함된 가격·성능·일정 등과 협상과정에서 나오는 조건은 제조사가 한국 정부에 제시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부는 전력화 지연 및 비용 상승 등의 부작용을 떠안아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필수조건을 통과한 업체들의 제안서 내용과 협상 조건 등이 비슷하면, 정부로선 내용과 조건의 신뢰도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

L3해리스는 4차례 입찰에서 제안서 등에 대한 논란이 없었다.

지난해 8월 다수의 국내 업체가 참여한 인더스트리 데이를 개최해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등 국내 업계 기여도와 절충교역도 세심하게 충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항공 측도 이를 적극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L3해리스 측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장비를 운송하는 수단으로 대한항공 비행기만 쓰겠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L3해리스는 25년간 한국에서 지상군용 사안형 야간투시경, 지뢰탐지기 등의 판매 실적을 쌓았다. 해군 P-3 성능개량, 공군 RC-800 백두정찰기 등에도 참여했다. 국내에서 신뢰가 축적될 기회는 충분했던 셈이다.

신뢰 문제는 양측이 제시한 레이더 성능에도 영향을 끼쳤다. 공군은 E-737처럼 360도 레이더 감시 성능을 원했다.

사브가 제시한 레이더는 360도 감시가 어려웠다. 사브는 기체 전면과 후면에 레이더를 추가해서 모든 방향과 영역에서 감시가 가능한 한국형 기체를 공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군과 방산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사브는 (조기경보기에서) 360도 감시 기능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다양한 센서를 단기간에 체계통합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레이더만 보면 엘타가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의 뛰어난 군사장비를 많이 구매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다.

군 소식통은 “트럼프 집권 하에 이뤄지는 이재명 정부 첫 주요 무기체계 선정인데, 정무적 관점에서 사브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대로 넘어가도 될까

방위사업청은 L3해리스가 국내 방산기여도, 운영유지비, 운용적합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L3해리스는 3·4호기를 한국에서 조립하고, 창정비 등도 국내에서 진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공군은 E-737과 L3해리스의 조기경보기를 함께 운용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대형수송기 2차 사업에서 브라질 엠브라에르 C-390이 선정된 바 있지만, 공중전을 지휘·통제하는 조기경보기는 사정이 다르다.

대형 여객기 기체에 맞춰진 공군 조기경보기 운영개념이 중·소형 비즈니스 제트기에도 적합할 지는 불확실하다. 개념과 교리에 대한 수정 소요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형수송기 2차 사업에 이어 산업적 요소가 기종선정에 영향을 미친 것도 군 안팎에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군대는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군은 최고의 장비를 요구·사용할 자격이 있다.

방위력개선사업은 군대의 존재 의의를 뒷받침하는 것이 기본 취지다.

그렇다면 방위력개선사업은 군대가 원하는 장비의 조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문서상의 요구성능(ROC) 충족 여부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서 운용요원 편의성과 작전 효율성 등까지 감안해야 한다. 향후 방위력개선사업과 획득체계 개혁 추진 과정에서 무기도입사업의 근본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산업적 요소가 기종선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늘어나면, 해외 방산업체에는 ‘한국 무기사업에선 산업협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위험도 있다.

파격적인 산업협력을 제시해 사업을 수주하고,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는 체리피커(유리한 것만 챙기고 손해는 보지 않으려는 소비자) 사례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려면, 사업을 수주한 해외 업체가 정부에 제시한 산업협력 방안을 방위사업청이나 해당 업체가 구체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국민도 알 권리가 있다.

공약(公約:국민에 대한 약속)이 공약(空約:헛된 약속)이 되지 않도록 해외 업체의 산업협력 이행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후속 사업에 참여할 해외 업체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 산업협력 제안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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