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과 동물, 환경의 건강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원헬스(One Health)'의 중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일상화되고, 고품질 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동물의 질병 예방과 치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제 동물용의약품은 가축 질병 예방과 진단·치료를 위한 단순한 수단을 넘어 국민 건강과 동물복지, 식량안보까지 아우르는 핵심 산업으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용의약품 산업은 지난 수십년 동안 가축전염병에 대응하고 국가방역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같은 가축질병이 발생했을 때, 우리 기술력으로 만든 진단키트와 소독약품은 빠르고 정확한 방역 조치의 기반이 되어 왔다.
국내 동물용의약품 수출은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와 수출시장의 경쟁 심화 속에서도 2017년 3000억원에서 2024년 4000억원 수준으로 30% 이상 성장해 순항 중이다. 또 정부와 산업체가 함께 개발한 '구제역 신속 항원감별키트'가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로부터 유일하게 성능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쾌거도 있었다. 이처럼 국산 동물용의약품은 기술력과 품질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며 세계시장으로 뻗어갈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시장은 지금,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신저리보핵산(mRNA), 유전자 재조합, 마이크로바이옴,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기술과 같은 첨단 기술이 동물용의약품 분야에 적용되면서 기술의 혁신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 각국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산업변화에 속도감 있게 대응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선진화 등 신속한 대처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의약품 산업도 기존의 제조·유통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과 핵심기술 확보 등 미래지향적 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지난 2일 '동물용의약품 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중장기적 시점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1조3000억원 수준의 산업 규모를 4조원대로, 수출 규모도 연간 3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신약 개발을 위한 R&D 강화, 규제 혁신을 통한 산업화 촉진, 수출지원 프로그램 확대, 품질 및 안전성 강화를 4대 전략으로 세웠다.
우선 R&D 지원을 강화해 신약 개발에 꼭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고 전략적인 품목을 집중적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대규모 R&D혁신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산업계·학계 등 현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동물용의약품 R&D 추진기획단'을 새로 꾸려, 현재 추진 중인 연구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미래를 대비한 혁신형 연구개발 전략도 마련할 것이다. 또 벤처기업, 연구개발 전문기업 등에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임상시험이나 시제품 생산 등을 지원하는 연구 기반도 확충한다. 경북 포항 공공 바이오파운드리와 전북 익산 동물용의약품 클러스터 등 R&D 인프라를 구축해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에 신약 개발의 전 주기를 지원할 계획이다.
둘째, 산업계에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던 인허가 제도 개선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동물의약품 제품들이 점점 과학적이고 첨단화되면서 허가 제도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복잡한 임상시험 자료 제출 요구나 통상 7~10년 이상 소요되는 신약 개발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체계를 구축하고, 기술개발 초기 단계부터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줄여나갈 것이다.
셋째, 수출 확대를 위한 체계적인 전략도 함께 추진된다. 우리 기업들은 품질은 우수하지만 수출 대상 국가의 까다로운 인증이나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수출용 제품 개발을 위한 기업 지원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국제협력 채널도 강화해 더 많은 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넷째,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핵심인 제조·품질관리(GMP) 기준을 국제 수준으로 높여나간다. 현재, 우리나라 GMP 기준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기준에 미치지 못해 이들 시장에 진출하기 어렵고 기존 수출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위협받고 있다. GMP 기준을 선진화하려면 시설과 장비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5년간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둔다. 2025~2029년까지 제도 기반을 마련하고, 2030년부터 2035년까지 GMP 선진화에 필요한 항목들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산업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 품질관리 강화, 그리고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은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동물용의약품은 단지 축산업과 가축만을 위한 의약품이 아니다. 우리 식탁의 안전한 먹거리와 반려동물의 건강, 나아가 사람과 동물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든든한 안전망이다.
동물용의약품 산업이 국민의 삶에 기여하고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산업계와 학계가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길 당부드린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필자〉1971년 전남 장성 출신으로, 광주대동고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A&M 대학에서 농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39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 정책기획관, 축산정책국장, 차관보와 대통령비서실 농해수비서관 등 농식품 분야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았다. 풍부한 농정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 수급 안정, 농촌 고령화 등 구조적인 당면 현안을 해결해 나갈 뿐 아니라, 스마트농업, 푸드테크와 같은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을 강조하며 우리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솔선수범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며, 이론적 지식과 현장의 목소리를 잘 조화시킴으로써 직원들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