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바이오 업계가 '가업 승계'의 덫에 빠지고 있다. 창업주 중심의 가족 경영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에서 실적 부진과 지분 분산이 겹치자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줄줄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배와 경영의 분리'가 여전히 미비한 업종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동성제약, 한국콜마, 한미약품, 제일바이오 등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에서 형제·모녀·삼촌·조카 간 분쟁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오너 일가 내부 갈등은 고소·고발, 지분 매입전, 이사회 장악 시도 등으로 번지며 경영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
동성제약에서는 나원균 대표와 삼촌인 이양구 전 회장이 경영권을 두고 갈등 중이다. 지난해 이 전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나 대표에게 넘기며 자연스러운 3세 승계로 보였지만 이후 지분 매각과 경영권 재확보 시도 과정에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현재는 쌍방 고발전으로 번졌으며 내달 12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표 대결이 예정돼 있다. 실적 부진과 함께 주가는 급락했고, 거래는 정지된 상태다.

한국콜마는 윤상현 부회장이 동생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를 상대로 이사 선임을 요구하며 갈등이 시작됐다. 창업주 윤동한 회장이 중재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이후 윤 회장과 윤 부회장 간 지분 반환 소송과 임시주총 공방으로 확산됐다.
콜마 그룹주는 일시적 급등을 보였으나 매각설 등 불확실성이 커지며 투자자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한미약품그룹도 경영권을 둔 갈등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난해 임주현 부회장과 어머니 송영숙 회장, 사모펀드 라데팡스가 연합해 형제 측을 견제하며 경영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최근 이 연합 내부에서 갈등이 재점화됐다.
한양정밀 신동국 회장의 지분(120억원)과 자택에 대해 가압류 조치가 이뤄졌고 신 회장은 지분 매각을 위해 복수의 금융사와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 간 계약 위반을 둘러싼 신뢰 붕괴가 본격화된 모습이다.
제약바이오업계 내 가족 간 경영권 다툼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제일바이오에서는 심윤정 대표가 오너 가족을 경영에서 배제하자 이에 반발한 창업주 부부와 차녀가 대표 해임을 추진하며 '장녀 vs 가족 연합' 구도가 5개월간 이어졌다. 동아제약의 '형제의 난' 등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제약바이오 업계의 구조적 문제로 '가업 중심의 지배구조'를 지목한다. 핵심 기술과 브랜드가 창업주 일가에 집중돼 있어 외부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하기 어렵고, 지분율이 분산된 상황에서 가족 내 주도권 경쟁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바이오기업들, 특히 규모가 작은 곳은 투자 및 R&D 자금 마련을 위해 상장을 하는데 이때 시장에 풀리는 주식이 많다. 때문에 오너가의 지분율이 비교적 크지 않다"며 "또, 보통 핵심 기술이 회사의 방향성인 탓에 이를 가업으로 물려주려는 경우가 많아 여기서 사달이 난다. 경영과 지배를 분리시키는 체계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