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쪽으로 가서 보고, 왼쪽으로 가서 봐도 그림 속 인물의 시선이 자꾸만 나를 따라오는 느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경험이다. 그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훌륭한 사진 작품을 완성하는 일은 정말 특별한 경우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사진작가 안드레스 베르테임은 작품과 관람객 간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박물관의 유령’ 시리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왜 하필 ‘유령’ 일까?
전시장 의자에 편히 누운 관람객 주위를 익살맞은 표정의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마치 ‘유령’처럼 보이는 이 천사들은 사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16세기 말 프랑스 퐁텐블로파의 작품이다. 작품과 관람객이 하나의 프레임에 녹아든 장면. 놀라운 것은 포토샵 합성이 아니라 35㎜ 카메라로 한 컷에 촬영한 사진이다. 첫 번째 노출에서 관람객을 찍고 두 번째 노출에서는 작품을 찍는 다중노출 기법이 비밀이다. 순서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전 세계의 박물관에서 작품과 관람객을 한 프레임에 담는다니 철저하게 계획된 촬영이냐 물으니 특정 작품이나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해 사전 연구는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작품과 관람객이 한 프레임에 어우러지며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에 흥미를 느낀다. 어떤 상황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프레임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피사체와 같은 우연이 사진의 ‘유령 같은’ 특징을 강화한다. 빛에 관해서는 오히려 엄격하다. 밝은 피사체가 어두운 배경에 비해 얼마나 투명해 보이는지를 계산해야 공간을 세부적으로 채울 수 있기에 노출 계산을 정확히 해야 한다.
우리가 박물관을 찾았다가 떠나도 작품들은 그곳에 계속 존재한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준은 어쩌면 인간의 유한한 삶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질문을 ‘누가 유령일까?’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박물관을 지키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들보다는 한정된 시간을 사는 우리가 박물관의 진짜 유령이 아닐까.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