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계와 기업들이 투자 결정을 미루고 있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주택 매매는 2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24일(현지 시간)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3월 미국의 기존 주택 매매량은 연율 402만건으로 직전 월보다 5.9% 급감했다. 이는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월별 감소 폭이다.
통상 미국에서도 3월은 주택 매매가 성수기에 진입하는 시점이다. 새 학년이 9월 시작되는 곳이 많은 미국 특성상 7월부터 시작하는 여름 방학 기간 중 이사를 하기 위해 봄철 거래가 늘어나는 탓이다. 그럼에도 올해 3월의 주택 거래량은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3월 거래량 가운데 가장 적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몇 주 동안 경제적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더 많은 구매자들이 불안해졌고 일부 주택매매는 무산됐다”며 “미국인들은 경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일자리 위기,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새 집 구매와 같은 중요한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3월의 거래 감소는 공급보다 수요가 부족한 새로운 국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주택 시장에서는 2022년 3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끌어올린 이후 매물 부족으로 거래가 이뤄지지 못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코로나19팬데믹 이전 2~3%대 대출 이자를 내고 있던 집주인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려면 새 집에 대한 대출 이자로 6~7%를 지불해야 해 이사를 포기하고 매물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구매자들은 기존 주택 매수를 포기하고 신축 주택을 구매해 왔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더 이상 이사를 미룰 수 없는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으면서 주택 재고가 수요보다 많은 분위기다. 지난달 말 기준 시장에 나와 있는 기존 주택 재고는 총 133만 호로 지난해 3월 111만 호보다 19.8% 상승했다. 현재 매매 속도를 기준으로 쌓여있는 재고치는 4개월 치에 이른다. NAR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재고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 매매 시장은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올해 주택 시장의 의미 있는 회복세를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증가세가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공장 설비를 늘리기 위한 신규 투자를 미루는 분위기다. 이날 상무부가 발표한 3월 내구재 주문 지표 가운데 세부 항목인 핵심자본재(Core capital goods)는 증가율이 전월대비 0.1%에 그쳤다. 핵심자본재는 기계와 소포트웨어 등 기업들의 설비 투자 의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전월 -0.3%로 주문이 감소했던 기저효과를 고려하면 3월 들어서도 기업 설비 투자는 줄어든 채로 정체됐다는 의미다.
3월 전체 내구재 주문 상승률은 9.2%로 2월 0.9%에서 급증했다. 이는 관세 전 자동차와 금속, 부품에 대한 주문이 늘어난 데다 월별 변동이 큰 보잉의 항겅기 주문이 급증한 데 다른 이례적 현상이다. 보잉 주문은 192대로 전월보다 13대 늘었지만, 동시에 최근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최근 보잉의 항공기 인수를 거부하는 등 불확실성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정책에 따른 불안정한 상황이 길어질 수록 기업과 소비자들의 지출이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CIBC 캐피털 마켓의 경제학자 알리 자페리는 고객 메모에서 “무역 불확실성과 관세로 인한 고통은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