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늦은 봄비와 함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3월의 어느 주말, 잠실종합운동장과 인근 도로에는 이런 추위를 뚫고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마라토너들로 가득했다.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접근이 쉬운 운동인 마라톤. 최근 주요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이 대학교 수강 신청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러닝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라”는 투자 법칙처럼 러닝 인구 증가는 관련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실적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호카 오네오네(Deckers Outdoor) 주가는 최근 5년 평균 44%의 성장률(CAGR)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는 단순한 취향 변화를 넘어 자산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많은 일상이 비대면을 중시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한편, 편리함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트렌드 변화에 따라 자동차 등록 대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629만 대로, 인구 1.95명당 1대의 차량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 말 대비 1.6% 증가한 수준이다. 과거에 비하면 증가율이 줄어들긴 했지만 인구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1.6%라는 수치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카오, 쏘카와 같은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주차장 서비스 산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도심 내 심각한 주차난도 주차장에 대한 시장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2022년 기준 국내 음식점 중 주차가 가능한 곳은 44.7%로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주차 가능한 음식점은 30.6%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통계청이 2023년 진행한 ‘향후 늘려야 할 공공시설’에 대한 설문에서도 응답자 중 14.4%가 ‘주차장 확보’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한 마디로 차량 이용을 선호하는 우리 삶의 변화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서 주차장 시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차장의 의미는 과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거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차장을 ‘법적 규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건축법에 따르면 위락시설은 100㎡, 문화 및 종교시설은 150㎡, 근린생활시설은 200㎡당 1대의 주차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건축물의 인허가가 제한되고, 건물이 지어진 이후에도 주차대수 제한으로 인해 건축물의 용도 변경이 불가능하다. 결국 건축물의 효율적인 사용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도 부동산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주차장’이 강력한 제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차장에 대한 인식이 ‘법률적 규제 사항’에서 건물의 가치 증진을 위한 핵심 요인으로 변하고 있다. 충분하고 편리한 주차 공간의 확보는 건물의 전반적인 가치를 높인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시장에서 ‘고급 아파트’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충분한 주차대수 확보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일반 아파트보다 넓은 주차 폭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근린생활시설에서도 주차장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근린생활시설은 대지면적이 200㎡, 평균 4층 이하, 연면적 500~700㎡ 정도로 소규모이다. 이러한 시설에 3~4대 정도의 주차장을 설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제한이 많다 보니 ‘충분한 주차 공간’을 마련한 근린생활시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주차가 충분한 건축물에 ‘희소성’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건물의 가치도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
현대의 주차장은 ‘차량 한 대를 수용하는 공간’을 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키기 위한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주차장에 대한 소비자의 시선도 ‘법적 기준’에서 ‘건물의 가치 결정 요인’으로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주차장을 바라보는 부동산 투자자의 인식도 변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