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인공지능(AI) 봉쇄 정책에도 중국의 AI 기술력이 미국을 맹추격하고 있다는 평가가 실리콘밸리에서 나왔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AI 기업이 첨단 반도체 없이도 미국 경쟁사와 거의 맞먹는 모습에 실리콘밸리가 경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 기업 딥시크 AI 모델이 인기나 성과 면에서 세계 10위권으로 치솟은 것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가 중국의 급속한 발전을 막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딥시크는 이달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 설계한 오픈소스 기반 AI 추론 모델 'R1'을 출시했다. 프로그래머가 인간 전문가의 지식을 제공해 모델보다 앞서 나가는 감독 미세 조정이라는 프로세스를 건너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료 서비스이며 소스 코드나 모델 파라미터를 공개, 세계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AI 모델을 자유롭게 수정·재학습할 수 있게 하는 등 협업과 생태계 확장에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한 벤치마크 테스트에 따르면 딥시크의 R1 모델의 영어·수학·코드 등 전반적인 성능이 오픈AI의 추론 모델 o1과 비슷하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엔비디아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최첨단 AI 반도체 대중국 수출이 전면 통제된 가운데 나타난 성과여서 충격적이라는 게 실리콘밸리 반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자문해온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레슨조차 '딥시크 R1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혁신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딥시크가 미국과 격차를 어떻게 줄일지 자국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지만,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규제가 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딥시크의 기술이 여전히 오픈AI나 구글보다 뒤처져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더 적은 칩과 덜 진보된 칩을 사용하고 미국 개발자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어떤 단계를 건너뛰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딥시크가 경쟁자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딥시크 역시 R1이나 V3 등 자사 AI 모델이 미국 등 서방국가의 AI 모델보다 더 좋거나 비슷한 성능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금융 수익을 예측하기 위해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실리콘밸리 기반 한 스타트업은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사용하다가 딥시크 모델로 전환했다. 4분의 1 수준 비용에 비슷한 성능을 담보한다는 이유였다.
최근 딥시크는 최신 AI 모델 중 하나를 훈련하는 데 560만달러 예산이 들었다고 밝혔다. 미국 AI 개발사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AI 모델 구축 비용으로 언급한 1억~10억달러와 확연히 비교되는 수치다. 최소한의 비용과 인프라로 최대 효율을 만들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