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 너머’ 오묘한 공명의 세계 열어가는 이민주 작가

2025-02-18

3월5일까지 '내일' 개인전...'공명필선’ 개척

전통동양화기법의 현대화, 외국서 인정받아

"서로 연결된 존재로서 공명해야 존재 의미"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저는 인도를 10여차례 여행하면서 부처가 최고의 신앙세계를 향기로 상징했던 것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향기가 대표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적 추구,갈망,피안에 대한 기대라는 점에서 인도수행자들의 모습을 닮았지요. 발심(發心)으로 촉발되는 향기는 인간 생명의 본원적인 역량입니다. 예술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3월5일까지 갤러리 내일에서 개인전을 갖는 이민주 작가는 어느날 인도 거리에서 허름한 차림의 수행자를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너무 초라한 행색에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외면하고 말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 순간 수행자쪽에서 알 수 없는 향기가 피어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생명의 오묘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공명의 순간이었다. 인도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영감과 작품세계를 넓혀가는데 큰 계기가 됐다.

“모든 존재는 공명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드러내게 됩니다. 서로 연결된 존재로서 공명을 해야 그 존재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이 같은 경지는 형상 너머 미묘한 향기가 넘쳐흐르는 세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형상은 다만 이 세계로 향하는 출입문일 뿐이라는 것. 그는 아랍에미레이트 여행,통도사 템플스테이 등에서 만난 사람, 풍경 등과 공명을 그만의 중봉 필법으로 담아냈다.

“붓을 똑바로 세워 골(骨)을 만들어야 획이 풍부하게 되어 정신이 비약할 수 있습니다.그래야 변화무쌍한 공명의 예민한 파동을 받아낼 수 있게 돼요.”

그는 붓을 공명의 떨림마저도 받아내는 촉수로 여긴다. 주로 동양화 모필을 사용하는 이유다. 게다가 장봉을 써 이를 극대화 시킨다.

“캔버스위에 제소나 두터운 미디엄을 바르고 갈필로 선을 만들어 가거나, 캔버스나 광목에 아교 포수를 한 후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때론 두꺼운 장지에 모필로 갈필과 윤필을 혼합해 운용하기도 합니다. 얇은 순지에 세필이나 아주 굵은 붓을 제작하여 교차사용하기도 하지요. 이 모든 행위를 공명의 파동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한 방편이지요.”

먹을 기본재료로 삼는 그는 한국화 튜브뮬감,봉채,분채,석채 등을 조건에 맞게 연기자를 고르듯 캐스팅한다. 여기에 과수와 아크릴물감을 혼합하기도 한다.

“모필은 양모,황새털,말귀밑머리털 등 부드러운 것부터 거친 것 까지 다양하지요. 저는 이같은 기본 동양화의 모필을 좋아합니다. 간혹 커다란 편필로 대작의 바탕색을 칠하기도 합니다. 굵은 선들은 주로 거친 모필로 갈필 운용을 합니다. 완전 굵은 선은 여러자루의 모필 붓을 묶어서 긋습니다. 높이 4M 가로 16M 대작을 그릴땐 싸리빗자루 여러 자루를 묶어서 사용한 적도 있지요.”

그는 작은 세필부터 지름이 35cm정도 되는 붓까지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편필은 중봉을 살리기에 적절하지 않아 자주 사용하지는 않으나 간혹 편필과 원필(일반 동양화 붓)을 묶어서 중봉을 살리기도 한다. 이 모든 행위는 공명의 리듬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공명의 필선이다.

“서울대학교에 회화과로 입학하여 동양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동양화의 매력에 빠져들었지요. 중학교 시절 미술반에 들어가 수채화를 비롯하여 전통 동양화를 그려보았지만 그 당시에는 지필묵을 이용한 기술적인 측면에 더 중점을 둔 것 같아요. 동양화의 명칭이 한국화로 바뀌며 한국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지필묵을 통한 기본 동양화의 단련은 끊임없는 그의 여정이었다. 벽화, 견화, 장지위 채색화, 수묵담채화, 칠화, 수제종이를 이용한 입체작업 등 다양한 기법연구도 지속했다.

“제 작업들은 한국미술계의 유행에 합류하지않고 늘 나만의 관심대로 진행되었고 때론 미술계의 흐름에 역류한 것 같기도 해요. 기본 전통동양화기법을 현대화시키려고 노력해오면서도 늘 한국인이라는 기본 중심을 고수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때문인지 1990년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미술대학교에서 초대전을 할때부터 독자성으로 인정받아왔고 그런 연유에서인지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의 초대전이 잇달았습니다. 서구와는 다른 동양화의 전통기법을 이용하여 한국적인 미학을 바탕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감성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표현하였다는 평을 받았지요. 20여년부터 참가해오던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는 제 작품에 퍼포먼스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오프닝세리모니에 초대했어요. 여러번 퍼포먼스작가로 활약했지요. 정적인 듯한 우리 동양화의 바탕에 이러한 동적인 요소가 늘 내포되어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중동’ 이야말로 사혁(謝赫)이 가장 중요시 한 ‘기운생동’의 기본이 아닐까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는 중국의 화론이나 필법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필선과 준법을 만들어 나갔다. 배움을 넘어선 창작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연스런 모습이다. 일체 만물이 연결되고 공명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의 ‘공명필선’을 개척해 왔다. 끊어지지 않는 파동의 무늬같은 것이다.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되는 것,깨닫게 되는 것이 진리지요, 그 진(眞)의 진정한 표현을 추구하며 계속 나아갈겁니다.”

그는 끝없는 붓질 천착으로 ‘형상 너머’ 오묘한 공명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