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의 사소한 발견] 멸치처럼 산다면

2025-01-09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 중에 하나는 멸치볶음이다. 멸치는 통째로 먹는 생선이라서 칼슘과 비타민D 뿐만 아니라 비타민A, 마그네슘, 기타 무기질이 풍부해서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뼈 건강과 두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음식이다. 한국 음식 중 국물이 있는 요리의 맛을 내려면 멸치를 우려내는 것은 기본,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로 쓰이니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멸치의 생태와 일생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떼를 지어 다니며 동물성 플랑크톤을 주 먹이로 삼는 멸치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낮은 층에 속하지만 개체수는 가장 많은 어종이다. 그래서 멸치잡이 배에서 그물을 한번 던지면 한가득 멸치가 잡히기 때문에 “일망타진”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가 보는 멸치는 말린 멸치로 큰 생선에 비해 누렇고 볼품없지만 바다에서 갓잡은 멸치는 비록 아주 작은 체구라도 은빛 찬란하다. 주로 수심 20미터 내외에서 살지만 빛을 좋아하는 본성 탓에 멸치잡이 배의 집어등 불빛에도 그만 유혹되고 만다. 멸치의 입장에서 보면 제 아무리 뼈대있는 물고기라고 해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비루한 삶을 이겨내려고 환한 빛으로 과감히 모여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물에 걸린 셀수없이 많은 멸치들은 그렇게 바다에서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멸치의 제2의 삶이 시작된다. 이제부터가 멸치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물에서 털린 멸치들은 눈부신 햇볕에 바짝 말라 짭조름한 마른 멸치가 된다. 그후에는 뜨거운 불에 삶아지거나 달궈져서 사람으로 치면 인생 쓴맛, 단맛 모두 본 후에 거무스름한 멸치볶음으로 재탄생하여 사람들의 식탁에 올려진다.

어렸을 때에는 왜 멸치볶음의 진미를 몰랐을까? 엄마들은 억지로라도 아이들의 입에 멸치볶음을 넣어주면서 말하곤 했다. “뼈가 튼튼해지려면 멸치를 많이 먹어야 해” 멸치는 본래 뼈대있는 집안의 태생인데 잘게 부서져 사라질 때까지 남의 집 뼈대까지 책임지는 참으로 지조있는 존재라는 걸 멸치 자신이 알았다면 얼마나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멸치처럼 사는 것이 결코 비루한 삶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멸치와 같은 삶이 아니라 고래나 상어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군림하고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는 현재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시국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멸치처럼 스스로 뼈대있는 존재이면서 국민들의 뼈대를 지켜주는 지도자가 왜 없을까. 자존심도 명예도 나라에 대한 염려도 모두 버리고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뉴스를 보니 저절로 한탄이 나온다.

오늘 저녁상에도 멸치볶음이 보란듯이 놓여있다. 뼈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근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뼈대를 지켜줄 멸치정치인이 너무나도 그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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