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주 일기] 친애하는 나의 개새끼들

2025-01-10

며칠 전 털복이가 켁켁거리더니 부르르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버둥거렸다. 두어 달 전쯤에는 두세 차례 뒷다리를 쓰지 못하며 주저앉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온몸으로 또 그런다. 다음 주면 만 열 살이 되는 놈이라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온 집안의 보일러 전원을 다 올렸다. 어디선가 켁켁거리는 게 감기라고 읽어서이다. 자유롭게 마당에 드나들라고 대가리 들어갈 만큼만 열어둔 현관 중문도 닫아버렸다.

2019년 5월 5일, 이 집을 짓고 들어온 날 오후, 아빠 도자기 작업장에서 데리고 온 뒤로 옷방의 보일러를 올린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곤 손바닥보다 온도가 낮은 부분을 마사지했다. 내 체온이 평균보다 조금 더 높은 게 다행이다. 개가 사람보다 체온이 더 높다니 열 많은 내 손바닥은 찬 부위를 더 잘 짚어낼 수 있으니까.

얼마 전에 유튜브 ‘쇼츠’에서 보고 얼른 구매한 기관지 영양제를 조물조물 만진 뒤 짜 줬다. 설명서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건더기와 국물이 분리되어 나온 꼴을 보게 될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기 전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는데 개를 키운 뒤로는 귀가 많이 얇아졌다.

이 영양제는 비닐 안에서 완전히 섞이기 전까지 뿌지직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듣더니 항상 늘어져 있는 귀를 쫑긋 세우곤 후다닥 달려와 단 한 번의 혓바닥질로 흡입했다. 다행이다. 아프면 안 먹는다는데 먹을 걸 여전히 밝히는 꼴을 보니.

까망이는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내가 자주 집을 비우는 탓에 털복이가 외로울까 봐 김해까지 가서 입양해 온 놈이다. 못생겼다고 다섯 마린가 여섯 마리 가운데 분양이 안 되고 혼자 남아 있었는데 겁이 많아서 그렇지, 영리하고 예민하고 애교 많고 시샘 많은 아주 훌륭한 개다. 대가리는 셰퍼드인데 귓등 긁을 때 끙- 소리를 낼 만큼 다리가 짧을 뿐이다.

새끼 땐 조막만 한 놈이 엥엥거리며 지나가는 모든 아줌마와 아저씨에게 그렇게도 앙증맞게 짖어대더니만 어쩌다 이렇게 겁쟁이가 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없을 때 누가 와서 흠씬 두들겨 패거나 윽박질렀던 건 아닌지 늘 의심하고 있다.

새끼 때부터 키웠다 보니 아무래도 털복이보다 안아줄 때가 더 많다. 내가 힘들이지 않고 들 수 있는 무게의 경계가 딱 15킬로그램이라 1킬로그램 초과하는 털복이는 작정해야 하고 1킬로그램 미달인 까망이는 한 팔로도 안을 수 있다. 까망이를 실컷 쓰다듬어 주다가 털복이에게로 몸을 돌리면 더 쓰다듬어 달라고 앞발을 번갈아 가며 팔을 잡아당기는데, 그날은 멀찍이 두 앞발에 머리를 괸 채 나와 털복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제 다 컸다, 이놈도.

내 개들에게 ‘우리 아기’란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엄마’란 말도 그렇다. 난 주인이다. 최근에 ‘보호자’까지는 양보했다. 상술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과 키우지 않거나 동물 키우는 데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중간에 있는 걸 내 정체성으로 두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내 개 이외에 다른 개들에게 관심이 없다. 어쩌다 보니 내가 거두게 된 동물들을 보호하는 자로서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감만 있을 뿐이다.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누가 먹는다고 해도 딱히 거부감은 없다. 굳이 다른 고기도 많은데, 할 뿐이지. 다만 내 개들을 먹겠다면 쌍심지 켜고 달려들 것이다.

난 자주 내 개들을 개새끼라고 부른다. 뱃가죽에 힘을 주고 부를 땐 화가 났다는 뜻이고, 큰 동작과 함께 즐겁고 높은 소리로 부르면 애칭이 된다. 새해 첫날에 반구대에서 줄을 풀어줬는데 털복이가 지나가는 개에게 달려들었다. 멀리서 야, 이 개새끼야!를 무한 반복하며 뛰어갔더니 오히려 그쪽 견주가 놀랐다. 아이고, 저 개는 죽었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개가 털복이에게 물렸으면 당장 죽진 않아도 뒷덜미에 구멍이 몇 개 났을 거다. 사람에게 순하기 짝이 없는 이 녀석은 제 몸보다 큰 놈을 공격한다. 저도 몇 번 당했고, 들개 떼에게 주인이 공포에 떠는 걸 여러 차례 봤기 때문이다.

격주로 제 사랑하는 개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민정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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