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구자욱(32)에게 지난해 포스트시즌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삼성이 플레이오프(PO)를 거쳐 한국시리즈(KS)까지 올라섰지만, KIA 타이거즈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준우승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더욱 아쉬움이 컸다. 구자욱은 지난해 PO 3차전부터 KS 마지막 5차전까지 결장했다. 구토 증세를 일으킬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LG 트윈스와의 PO 도중 왼쪽 무릎까지 다쳐 경기를 뛸 수 없었다. 결국 KS 패배를 벤치에서 지켜본 구자욱은 “2등이라는 기분을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잘 새겨뒀다가 내년 시즌을 준비하겠다. 올해보다 더 강한 삼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진한 아쉬움을 삼킨 구자욱이 다시 달리고 있다. 구자욱은 지난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준플레이오프(준PO) 3차전에서 3번 우익수로 나와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5-3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까지는 8타수 1안타로 침묵했지만, 이날 2-0으로 앞선 3회 말 2사 2루에서 중견수 키를 넘기는 적시 2루타를 터뜨려 쐐기점을 냈다.
진귀한 장면도 연출했다. 5회 SSG 이로운과의 맞대결에서 17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타자와 투수의 17구 승부는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신기록. 이번 가을야구를 대하는 구자욱의 집중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기 후 만난 구자욱은 “준PO를 시작하면서 타격감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이렇게 이길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이어 “(17구 승부는) 타구가 앞으로 나가지를 않더라. 어떻게든 꼭 살아나가고 싶었는데 삼진으로 신기록을 썼다”며 멋쩍게 웃었다.
공수주 실력이 빼어나고, 외모까지 준수한 구자욱은 2012년 입단 때부터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2022년 3월에는 삼성과 5년 120억원의 다년계약을 맺어 삼성맨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어 지난해 타격 2위(타율 0.343), 올해 타격 6위(타율 0.319)의 뜨거운 방망이를 앞세워 삼성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로 올려놓았다.
최근에는 경사스러운 소식도 접했다. 다음 달 체코, 일본과 치르는 평가전의 국가대표 일원으로 발탁됐다. 사실 구자욱은 자신의 이름값과는 달리 태극마크와는 연이 없었다. 중요한 대회가 있을 때마다 부상과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이 유일한 출전 무대. 그나마도 3경기에서 12타수 무안타로 부진했고, 이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승선이 계속 불발됐다. 맹활약을 펼친 지난해에는 프리미어12 대표팀으로 뽑혔지만, 가을야구에서 생긴 부상으로 끝내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8년이란 시간을 기다린 구자욱은 “태극마크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큰 무대 출전은 당연히 영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아쉬움은 있었지만 빨리 잊었다. 지금도 국가대표는 잠시 뒤로 미뤄놓고 포스트시즌에만 집중하고 있다. 일단은 가을야구를 잘 치르고 평가전을 준비하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구자욱이 가을야구만 바라보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팬들이다. 삼성은 올 시즌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홈관중을 기록했다. 71경기에서 무려 164만명의 구름관중이 몰렸다. 구자욱은 “우리는 올해 8위까지 내려왔다가 4위로 마무리했다. 또,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거쳐 준PO까지 올라왔다.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면서 “가을야구 역시 마지막까지 나태하지 않은 자세로 치르도록 주장으로서 독려하고 있다. 올해 가장 많이 구장을 찾아주신 팬들을 위해서라도 멋진 야구를 펼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대구=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