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고속도로의 길이는 올해 3월 기준으로 총 5224㎞에 달합니다. 1968~1970년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의 순차적 개통을 시작으로 50여년간 많은 고속도로가 건설된 건데요.
이 중 민간사업자가 건설·관리하는 민자고속도로(827㎞)를 제외한 4397㎞를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도공)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전체 고속도로의 84%가 넘는 수준입니다.
그 사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도 크게 늘었는데요. 도공에 따르면 1969년 한해 289만대이던 통행량은 1971년에 1000만대(1045만 9000대)를 넘어섰고, 1986년에 1억대(1억 1185만 2000대)를 돌파했습니다. 지난해에는 18억 7000여만대를 기록했습니다.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빠르게 달릴 수 있고, 달려야 하는 도로입니다. 하지만 도로 용량을 넘칠 정도로 차량이 급증하면 교통정체가 빚어지고, 적지 않은 민원도 생기는데요.
물론 차량이 증가하는 만큼 도로를 더 많이 건설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과 효율성 등을 따져보면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대신 기존 도로의 소통을 조금이라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묘수’를 적극적으로 찾게 되는데요.
도공 역시 그동안 많은 보완책을 고안하고 추진해왔습니다. 그 중엔 효과가 작지 않거나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받는 방안들이 여럿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5가지를 살펴봤습니다.
멈춤 없이 통과...하이패스
하이패스는 통행권을 받거나 통행료를 결제하기 위해 많은 차량이 몰리는 고속도로 요금소의 만성적인 지체와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전자통행료수납시스템(ETCS, Electronic Toll Collection System)입니다.

차량에 무선통신 단말기를 장착해 요금소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리면서 통행료를 자동으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25년 전인 2000년 6월로 판교·청계·성남 요금소에 시범 도입됐는데요.
2007년 전국 요금소로 확대된 이후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398개 영업소에서 1695개의 하이패스 차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이패스 보급률은 작년 말 기준으로 92.4%에 달하며, 이용률도 91.9%나 되는데요.
전국으로 확대된 2007년 말에 이용률이 15.6%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늘어난 수치인데요. 요금소에서 따로 정차할 필요가 없다는 편리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도공에 따르면 2007년 전국 개통 이후 지난해 말까지 하이패스의 누적이용 편익이 4조를 넘는다고 하는데요. 통행시간과 운행 비용, 환경 절감 효과를 다 따진 수치라고 합니다.
하이패스는 그 자체로도 변신을 거듭해 왔는데요. 기존에 차로가 하나뿐이던 것이 2017년부터는 2개 차로 이상으로 확대해서 처리용량을 60% 넘게 늘린 ‘다차로 하이패스’가 등장했습니다.

또 재정고속도로와 민자고속도로를 연이어 달릴 경우 중간에 요금을 결제해야 하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중간요금소에서 정차 없이 통과한 뒤 출구에서 일괄정산하는 ‘원톨링’ 시스템도 2016년에 도입됐습니다.
갓길도 필요할 땐 통행...갓길차로제
갓길은 유사시 고장 차량이 대피하거나 구급차와 구난차량, 도로유지보수 차량 등이 빠르게 통과할 수 있도록 설치된 곳입니다. 일반차량이 함부로 갓길로 달리면 범칙금 6만원(승용차 기준)에 벌점 30점이 부과됩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갓길차로제가 시행되는 구간인데요. 흔히 가변차로 구간으로도 부르며 교통량이 많은 시간대 또는 돌발상황 발생 때 일반차량에도 갓길 주행을 허용함으로써 도로 용량을 늘려주는 교통운영 전략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차량이 몰려 혼잡한 시간대에 평소 이용이 제한된 갓길에 통행 가능 신호를 주고, 일정시간 개방해서 교통 정체를 완화하는 내용인데요. 추가로 많은 돈을 들여 차로를 더 건설하지 않아도 한시적으로 차로 하나가 더 늘어나는 효과를 보는 셈입니다.

갓길차로제는 2007년 9월 영동고속도로 여주IC~여주분기점 사이 5.6km 구간에서 첫 시범운영을 했으며, 현재는 경부고속도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등 총 10개 노선 247.5km 구간에서 운영 중인데요.
이를 통해 시간당 약 1000대 이상의 교통 용량을 추가로 확보해 일시적인 혼잡구간의 정체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게 도공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효과가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갓길차로제를 함부로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본래의 목적을 저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운영 구간에는 750m 간격으로 비상주차대를 설치해야 하고, 실시간 모니터링도 필수입니다.
선만 따라가면 OK, 노면색깔유도선
지난 2011년 6월 서해안고속도로 안산분기점에 각각 분홍색과 초록색으로 칠해진 유도선이 처음 설치됐습니다. 진행 경로를 색깔로 구분된 선을 통해 안내해주는 ‘노면색깔유도선’인데요.
이 노면색깔유도선은 운전자가 분기점 같은 복잡한 교차로에서 짧은 시간 내에 주행경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 때 혼란을 줄여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사고도 줄이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노면색깔유도선은 지난 2009년 한국도로공사 직원(윤석덕 차장)이 영동고속도로에서 안산분기점에서 서울 방향과 목포 방향 연결로를 혼동해 길을 잘못 들어간 경험이 탄생의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요.

이후 2011년 3월 안산 분기점에서 차로 급변경으로 인한 사망 사고를 목격하며 본격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아이들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차선에 색깔을 입혀 차량을 유도하는 ‘노면색깔유도선’을 고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로 차선은 도로교통법상 교통안전시설인 데다 당시 법에서 규정한 차선의 색상은 흰색, 노란색, 청색 등으로 색상별 용도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노면색깔유도선은 법 위반이었습니다.
이에 윤 차장은 포기하지 않고 고속도로 지구대와 협력해 노면색깔유도선 설치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2011년 안산분기점을 시작으로 2012년 4월과 5월에는 경부고속도로 판교 분기점,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에 설치됐습니다.
또 2017년에는 모든 고속도로 분기점에 확대 적용됐고, 관련 법 규정도 정비됐습니다. 요즘은 고속도로뿐 아니라 일반도로에서도 노면색깔유도선을 쉽게 볼 수 있어 운전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편리합니다.
게다가 노면색깔유도선 설치 이후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분기점과 IC에서 발생한 사고가 305건에서 222건으로 약 27%나 줄었다는 소식도 있네요.
버스는 더 빠르게...버스전용차로
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로제가 처음 시행된 건 1994년으로 경부고속도로 양재IC~신탄진IC 사이였습니다. 당시 여름 휴가철과 추석 등 일정기간을 정해 버스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운영했지만, 그해 10월 중단됐는데요.
이후 주말에만 운영하다가 2008년부터 다시 평일로 확대됐습니다. 오랜 기간 평일에는 오산에서 양재 구간, 주말에는 신탄진에서 양재 구간에서 운영되다 지난해 평일 구간이 안성에서 양재로 늘어났는데요.
버스전용차로제는 대중교통이용 활성화와 교통약자의 이동성 확보, 버스의 정시성 확보를 위해 도입됐습니다. 실제로 버스전용차로 도입 이후 버스의 통행속도는 빨라졌는데요.
지난해 하반기를 기준으로 보면 버스전용차로 전 구간의 평균 통행속도는 시속 95㎞에 달합니다. 거의 막힘없이 다닌다는 얘기인데요. 특히 오산~남사진위 구간은 운행 속도가 시행 전보다 14㎞나 늘었다고 합니다.

버스의 평균 통행속도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버스 승객의 통근시간이 줄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실제로 안성~양재 구간의 버스 이용자의 평일 출퇴근 시간이 평균 33분 단축됐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버스전용차로에 대한 일반차량 운전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앞서 영동고속도로에도 2018년 버스전용차로(신갈~여주)가 도입됐지만, 일반차로 정체 문제가 심각해지자 민원이 커지면서 신갈~호법으로 구간이 줄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체가 줄지 않고 민원이 계속 발생하자 2024년 6월에 결국 폐지됐는데요. 이 때문에 현재 버스전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에만 남아 있습니다.
장거리와 단거리, 차로를 구분
도공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장수IC~중동IC에 도입을 검토 중인 교통관리 방안이 있는데요. 바로 ‘장거리 전용차로’입니다. 고속도로를 길게 주행할 차량과 짧게 달릴 차량이 이용할 차로를 아예 구분해 놓자는 의미인데요.

이 구간은 고속도로 IC 간의 간격이 짧고, 단거리 무료 통행 차량이 많은 탓에 잦은 차로 변경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도로 용량보다 교통량이 적은데도 심한 정체가 자주 발생하는 곳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장거리와 단거리 교통류를 분리해서 차량 간 상충을 줄이고, 통행 속도를 향상하자는 겁니다. 차로가 아예 나뉘면 차로 변경 역시 줄어들어 전반적인 차량흐름도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인데요.
도공은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이르면 올해 내에 장거리 전용차로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도공 관계자는 “이 방안이 성공하려면 운전자들이 차로 위반을 최소화하고, 장거리와 단거리 차로를 준수하는 게 필수”라고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