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가 “하청·파견 노동자에 대해 노동법이 이미 적용되고 있다”는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엔(UN)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규약위원회(사회권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노동계가 비판했다. 노동계는 국회에 정부 보고서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단체 ‘손잡고’와 금속노조, 금속노련은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가 2023년 12월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제출한 제5차 국가보고서에 관한 의견을 밝혔다. 1990년 유엔 사회권규약에 가입한 한국은 1995년부터 7~8년 주기로 규약 이행 상황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5차 국가보고서에는 2017년 10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최종 권고를 바탕으로 그 달부터 2023년 10월까지 한국 정부가 취한 이행 조치가 담겼다.
보고서를 보면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노동법이 하청노동자, 파견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도록 하라”고 권고한 데 대해 정부는 “하청노동자, 파견노동자에 대해서는 노동법이 이미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의 정의를 확대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해 입법을 무산시킨 사실을 은폐했다고 비판했다. 손잡고는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원청을 대상으로 사실상 제약되고 있어 이를 개선하고자 노조법 2·3조 개정을 시도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이 좌초됐기에 모든 노동자에 대한 노동법 적용 시도는 정부의 거부로 무산된 것”이라고 했다.
유엔은 한국 정부에 합법 파업의 요건을 완화하고 형사처벌 및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 쟁의 행위 참가 노동자에 대해 이뤄진 보복 조치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할 것도 권고했다. 정부는 보고서에 “노조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및 형사처벌은 폭력·파괴 행위 또는 사업장을 전면적으로 점거하는 등 불법 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현행 노조법에서는 정당한 파업에 대해 민·형사상 면책을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잡고는 “사회권위원회는 ‘합법 파업 요건을 완화하라’고 했는데 정부는 ‘정당한 파업이면 보호하고 있다’는 식으로 어긋난 답변을 하고 있다”며 “정리해고, 파견·하청·특수고용 등 노동자는 노동권이 제한돼 합법 파업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이로 인해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엄상진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조선 하청노동자들이 받은 470억원 손해배상은 무엇인가. 하청 노동자가 지금도 원청과 교섭하지 못해 싸우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라며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왜 두 차례나 거부한 것인가”라고 했다.
노동계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 5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의견서를 전달해 국회가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