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대의 낮은 수익률로 기록하고 있는 퇴직연금이 수술대에 오른다. 여당에선 개인이 가입해 운용하는 현재의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특별 기구를 만들어 통합 기금형으로 운영하는 제안을 내놨다. 정부도 하반기 관련 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노후 대비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금융권에서는 반발을 하고 있어 퇴직연금 개혁 논의 방향이 주목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16일 발표한 ‘사적연금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2023년말 기준으로 퇴직연금의 직전 10년 운용수익률은 2.07%였다. 국민연금의 연평균 운용수익률이 5~6% 수준임을 고려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여기에 중도 인출에 나서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2023년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는 계좌는 전체의 10.4%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약형 제도보다 기금형 제도를 중심으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노후소득준비 관점에서 적절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현재처럼 근로자들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적립금을 운용하는 것보다 적립금을 모아 사용자로부터 독립된 기금을 설치한 뒤 자산 운용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국회에서는 이같은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공약 논의에 참여해온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여러 기업들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모아 50조원 이상의 통합 기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국가퇴직연금신탁’(NEST)와 유사한 방안이다. 기금운용은 기존 연금사업자들이 컨소시엄 형태의 기구를 설립하거나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위탁 운용하는 방안, 기업별·산업별 기금수탁법인 설립 등을 거론했다. 안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정부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전문가 자문단을 발족한 상태다. 정부는 하반기 법안 발의를 목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향후 국정기획위원회와 방향성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미 2022년 30인 이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통합형 기금인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을 도입한 바 있다. 이 기금은 2023년말 기준으로 규모는 4734억원으로 다소 작았으나, 6~7% 수준의 양호한 수익률을 달성했다. 안 의원은 공적 퇴직연금 기구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푸른씨앗의 대상을 모든 중소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다만 정부 자문단의 논의 과정에서는 ‘책임 소재’를 두고 쟁점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문단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근로가가 본인 의사에 따라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은 기존에 수익률이 낮아도 근로자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 문제가 없었다”며 “하지만 기금형은 전문가가 운영하는 것이라, 손실이 나서 실질적으로 받는 금액이 줄어든다면 책임 소재가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증권·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들 사업자는 기금형 도입 시 기존 계약형 체계가 무너지고 시장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이 운용 주체로 나설 경우, 공적 기금이 금융시장을 과도하게 지배할 가능성도 문제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