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트럼프 2기] 美 우선주의 본격화…권한대행체제 韓, 정상외교 ‘비상’

2025-01-13

美 ‘슈퍼 정부’ 출범과 영향

2기 내각에 충성파 전면 배치

“대통령 공적 행위 퇴임 후 면책”

무소불위 권력에 면죄부까지

일론 머스크 등 기업가 출신들

주요 보직 차지 ‘억만장자 내각’

20세기 이후 단 한번도 없었던 ‘징검다리’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행정부가 20일 공식 취임한다. 78세라는 역대 최고령 부동산 재벌 출신에 형사사건 중범죄 기록 등 역대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만에 재집권하며 미국 역사를 새롭게 쓸 전망이다. 제47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지난해 선거 캠페인 기간 “취임 첫날(1월 20일)만 빼고는 독재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그날 하루만큼은 ‘독재자’처럼 대놓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겠다는 취지다. 세계질서의 급격한 지각변동 조짐에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미국 역사상 입법·사법·지방정부까지 장악한 ‘슈퍼 정부’ 트럼프 2기를 맞는 대한민국의 정책 기조와 안보·경제 등 각 분야별 영향을 톺아본다.

◇ ‘첫날만큼은 독재자’…공약 41개에 쏠리는 세계 이목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유세 중 “취임 첫날 바로 한다”고 선언한 공약은 41개. 미국 언론은 이를 위해 필요한 행정명령이 25개 이상으로 분석했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의회 입법 절차없이 대통령 서명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트럼프는 취임일 미 역사상 초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공표했다. 특히 부모의 국적과 무관하게 미국 땅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지 시민권’ 제도를 취임 첫날 끝내겠다고 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비난해온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바로잡겠다는 조치들도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스포츠 출전을 막고 미성년자의 성전환 수술을 국가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공약이 이에 해당한다.

국제 기후변화 협약인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하고 전기차 우대와 친환경 정책을 폐지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개방적 국경 정책, 총기 구매 배경 조사 확대 지침 등도 모두 철회시키거나 뒤집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트럼프 극렬 지지층을 일컬음)’ 구호를 국정운영 기조로 내건 만큼 세계 안보질서를 대대적으로 바꾸려는 경향을 보인다.

◇ ‘마가 내각’ 충성파 전면 배치…지각변동에 촉각

트럼프 2기 내각은 ‘미국 우선주의’로 무장한 충성파를 전면 배치했다. 여기에다 보수 우위의 연방 대법원이 지난해 대통령의 공적 행위는 퇴임 후에도 완전히 면책된다고 판결해 사실상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에 면죄부까지 쥐어줬다. 연방의회 상· 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의회 견제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트럼프 2기의 주요 보직에는 트럼프 측의 신(新)실세로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에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막대한 부를 가진 기업가 출신이 적지 않게 포진했다. 재무부, 상무부, 에너지부 등 장관 후보자 등이 기업가 출신이다.

이들의 합류로 트럼프 내각은 구성원 전체 재산이 일부 국가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억만장자 내각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 2기 정부의 핵심자리에는 충성파를 배치했다. 경륜이나 능력보다 충성심에 근거해 인사를 했다는 분석이다. 1기 때 이른바 ‘소신파’들로 인해 수시로 충돌한 경험에서 얻은 전략이라는 평가다.

이를 동력으로 집권 1기 때보다 더욱 강경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내세워 미국 이익에 반하는 나라는 동맹이라 할지라도 거센 위협과 압박을 가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 이익에 반한다면 동맹을 상대로도 ‘고율 관세 부과’를 무기로 위협하고 ‘안보 무임승차론’을 들먹이며 고강도 압박에 나설 것을 공공연히 시사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지칭하면서 2026년 적용될 금액의 9배 수준인 100억 달러(약 14조5천억원)로 분담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제외교무대서 ‘스트롱맨’ 연대 과시할 수도

트럼프 당선인은 국제 안보 동맹에서 ‘개인기’를 통해 안정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집권 1기에 이어 러시아나 중국, 북한 등 정상과 개인적 친분을 토대로 한 직접 정상외교와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까지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이른바 ‘저항의 축’ 국가의 스트롱맨들과 개인적 친분을 과시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시진핑 주석과의 '브로맨스'도 과시하고 있다. 시 주석의 의중을 확인하지도 않고 오는 20일 자신의 취임식에 시 주석을 초청하기도 했다.

실제 두 번째 임기 시작이 임박해지자 외국 정상은 물론 경제계 거물들이 트럼프와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외국 지도자로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이 트럼프 당선인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를 찾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의 회동 가능성도 열어뒀다.

정부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접촉면을 넓히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 이후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을 특사로 파견해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르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후보자를 만나는 방안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당한 상황에서 트럼프 측이 한국 정부 목소리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조태열 장관의 언급처럼 한국 외교가 “미증유의 국내 정치적 갈등 상황으로 인해 손발이 묶여있는 형국”(7일 한국외교협회 신년사)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측과의 네트워크 형성에 주력하는 것과 함께 대북정책 등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한미동맹에 다소 회의적 관점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모든 채널을 활용해 측근 그룹에 접근해 우리의 논리를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 ‘對트럼프 외교’ 비상

예측 불가능한 요구로 한미관계에 태풍을 몰고 온 트럼프 정부를 다시 맞게 된 ‘권한대행 체제’ 한국은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1기 행정부 당시 ‘MAGA’ 정책을 재현하며 동맹도 거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국의 역할과 비용 부담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으로선 한미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통해 미국 새 행정부 정책에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미국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맹국을 향해 방위비 증액 압박에 나섰는데 취임 이후에는 그 공세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17년 처음 집권 때는 한반도 정책 수립에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번에는 경험이 쌓인 만큼 각종 현안에 있어 ‘속도전’을 펼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려 할 경우 우리로서는 ‘정상 외교’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미 새 정부에 알렉스 웡(국가안보 부보좌관)·윌리엄 보 해리슨(대통령 보좌관) 등 1기 행정부에서 북미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인사들을 기용하며 정책의 틀을 짜기 시작한 상태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로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2017년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전화 통화만 했을 뿐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극렬하게 대립 중인 여야가 나란히 미국을 방문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 7명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출국한다. 국민의힘에선 김석기·윤상현·인요한·김건, 더불어민주당에선 조정식·김영배·홍기원 의원이 각각 참석한다. 비상 계엄·탄핵 정국 속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모처럼 동수(김석기 위원장 제외)를 맞춰 미국을 찾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외통위와는 별개로 나경원·김대식·조정훈 등 일부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다만 정치권에선 트럼프는 고사하고 트럼프 정부 실력자를 상대로 하는 유의미한 ‘의원 외교’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선전용 성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다. 이날 우리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 사절로 1천500여명 정도 들어가는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건 조현동 주미대사 부부가 유일하다.

어디까지나 트럼프 부부 마음에 달린 일이지만 이 부부와 유의미한 대화를 나누거나 실력자들과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의원 외교도 희박하고 공식적인 논의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트럼프 측에 닿을 만한 고위급 로비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지속된 정국 혼란 등으로 스텝이 꼬여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당장 트럼프가 한국에 ‘폭탄’이 될 만한 현안을 던질 경우 누가 카운터파트가 돼 이를 상대할 것인지 뾰족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지연기자 lj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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