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는 독일, 국방·인프라에 천문학적 투자 예고… 재무장 위해 큰 발걸음 성큼

2025-03-05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독일이 진정한 시대 전환(Zeitenwende)을 맞았다."

독일의 주류 정치권이 4일(현지시간) 국방·인프라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기 위해 '재정준칙' 완화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키로 합의하자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변신을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80여년 간 독일은 전범국이라는 굴레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채 군사력·방산과 거리를 두고 오직 경제에만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 등으로 국제 안보 상황이 빠르게 혼란과 위기 상황으로 빠져들면서 국내외에서 "독일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독일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연합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은 이날 베를린에서 합동 회의를 열고 독일의 엄격한 재정준칙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은 다음 주 중으로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지난달 23일 총선에서 기민·기사연합은 208석을 획득해 원내 1당을 차지했고, 사민당은 120석으로 3위에 올랐다. 전체 의석은 630석이다.

양측은 오는 25일쯤 새 의회 개원과 동시에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후 독일 정치권을 양분했던 좌우 진영의 두 정파가 역대 5번째 연정의 출범을 눈앞에 둔 것이다.

독일 주류 정치권이 재정준칙을 바꾸려는 이유는 국방과 인프라 분야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기 위해 정부 재정을 짓누르는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독일은 유럽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츠 대표는 "우리는 미국이 앞으로도 (유럽과의) 상호 동맹 의무를 계속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며 "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 나라와 동맹 방어를 위해 자원을 상당히 확충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방에 대한 추가 지출은 우리 경제가 아주 짧은 기간 내에 안정적인 성장으로 돌아갈 경우에만 감당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인프라에 대한 빠르고 지속가능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이 합의한 방안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군비를 조달하고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위해 무제한의 부채를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국방비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1%를 넘더라도 재정준칙에서 예외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부채 브레이크(debt brake)라고 불리는 독일의 재정준칙은 재정적자를 GDP의 0.3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1차 내각 시절인 2009년 도입했으며 독일 헌법인 기본법 109조 3항과 115조에 규정돼 있다.

연정 파트너들은 또 향후 10년 간 인프라에 투자하기 위해 5000억 유로(약 775조원) 규모의 기금을 설립하기로 했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관계위원회(CFR)의 유럽 펠로우 리애나 픽스는 "재정준칙 완화는 독일의 진정한 시대 전환, 즉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계 글로벌 투자은행 베렌버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홀거 슈미딩은 "이것은 독일의 재정적 지각변동"이라며 "메르츠 대표와 그의 연정 파트너들이 이 기회에 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재정 개혁이 독일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독일 거시경제·경기연구소(IMK)의 세바스찬 둘리엔은 "특별 인프라 기금과 부채 브레이크 개혁은 진정한 게임 체인저"라며 "이것이 성공하면 독일 경제가 빠르게 침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은 다시 한번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빈 윙클러도 "우리는 이것이 전후 독일 역사상 가장 역사적인 패러다임 전환 중 하나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편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후보자는 이날 미 상원 군사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현재 독일의 3분의 2 크기였던 서독은 1988년 12개의 사단이 있었으나 현재 독일은 한 개의 단일 사단도 구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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