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극복 아니고 즐거움"...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쓰지이

2025-01-22

“그럼 바람의 색은 무엇인가요?”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辻井伸行·37)가 어려서 어머니에게 했다는 질문이다. 미국 PBS의 다큐멘터리 ‘터칭 더 사운드’의 한 장면. 쓰지이는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다. 태어난 직후 눈을 뜨지 않았고, 시각이 전혀 없는 소안구증이다. 어머니는 사과와 바나나를 쥐어주며 색깔을 가르쳤다. 그때 쓰지이가 바람의 색을 물었다. 바람에는 색이 없다는 말에 그는 자신에게는 색이 느껴진다 말했다.

쓰지이는 음악에서도 색을 찾아낸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음악 안에도 각종 색깔이 가득하다”고 했다. 비장애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3월 내한 공연을 앞두고 2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쓰지이는 “어려서도 지금도 피아노 칠 때가 가장 즐겁고, 어떤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어도 음악이 있어 좋다”고 했다. 쓰지이는 어려서 어머니가 캐롤 ‘징글벨’을 부르자 장난감 피아노로 따라 치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악보와 건반을 모두 볼 수 없었지만, 귀로 듣고 건반에 손을 올리고 들리는 음악을 따라서 쳤다. 특히 쇼팽의 폴로네이즈 ‘영웅’을 좋아해 음반이 고장날 때까지 반복해 들었다고 한다.

점자 악보를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려 대신 악보의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녹음한 음원을 들으며 곡을 익힌다. 무대에 등장할 때는 투어 매니저가 함께 해 피아노 앞에 세워준다. 쓰지이는 몸을 살짝 돌려 피아노를 찾아내고 거침없이 연주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하고 공부한 피아노로 고등학생 때인 2005년 쇼팽 콩쿠르에 출전해 준결선까지 올랐고 비평가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미국의 원로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는 “신은 그에게서 눈을 가져가는 동시에 엄청난 재능을 선물했다. 따뜻하고 진심 있는 소리를 가졌다”고 했다. 이후 유럽ㆍ미국ㆍ아시아에서 초청 무대에 섰고 지난해 4월에는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과 계약해 음반을 발매했다. 일본인 피아니스트 최초의 도이치그라모폰 전속 계약이었다.

이 경력에서 많은 이가 ‘역경 극복’을 떠올리지만, 쓰지이는 ‘즐거움’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친다. 22일 간담회에서 그는 “음악 자체가 즐거움이고,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청중에게도 즐거움을 전달하는 연주가 가장 좋은 연주라 생각한다.” 누구의 웃는 모습도 본 적이 없을 테지만 쓰지이는 내내 웃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성격 자체가 밝고 긍정적이다”라며 슬럼프에 대한 질문에는 “슬럼프를 겪은 적이 없어서 극복한 방법도 말씀드리기가 힘들다”고 했다.

쓰지이는 지난해 3월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 당시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1년 만에 다시 온다. “한국의 열광적 청중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번에는 베토벤 ‘발트슈타인’ 소나타와 쇼팽 소나타 3번이 주요 연주곡이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연주곡들”이라며 “그중에서도 쇼팽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쇼팽은 섬세하고 우아하며 멜로디가 아름답다. 조국 폴란드를 사랑했던 마음까지 음악에서 느껴진다. 쇼팽은 내가 피아노를 시작한 원점이다.” 쓰지이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도 쇼팽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올해 쓰지이는 한국 뿐 아니라 일본과 호주의 투어 공연을 비롯해 뉴욕 카네기홀,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 등에서 연주할 계획이다. 그는 “모든 피아노곡을 다 쳐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모두 연주하고 싶다. 요즘에는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한 러시아 음악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했다. “피아노 외에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바람, 새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라고 한 그는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 피아니스트가 안 됐다면 초밥 장인이 됐을 것 같다”며 웃었다. 쓰지이의 두 번째 한국 공연은 3월 1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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