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설’이라는 명절을 마음으로 아끼고 기대한다. 이유는 미련과 희망이다. 사실 한 해를 마음으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인데, 보통 1월1일 새해를 TV 화면으로 종치는 것을 보며 시시하게 시작해버리고는 또 그냥저냥 한 달쯤 보내고 나면 이게 아니다 싶어진다. 그때쯤이면 마음과 집 안의 묵은때와 오래된 것들을 내버리고 다시 상큼하게 시작을 하고픈 마음이 든다. 내게는 두 번째 새해가 진짜 출발인 것이다.
대통령이 동원한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채 지워지지 않았는데,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난동까지 보고 난 후 설이란 두 번째 새해를 준비하게 되었다. 연속되는 경악스러운 사태를 지켜보는 것이 고역이지만 결국 한국의 정치는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애써 생각해 본다.
사실 2025년을 정말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정책에 관한 두 번째 기회를 제대로 만드는 것,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감세와 함께 등장했고, ‘약자복지’를 내세우면서 다른 어느 정부보다도 사람들을 복지 수급자와 수급자 아닌 사람들로, 젊은이와 기성세대로 나누는 분할적인 접근을 하였다. 흥미롭게도 정부는 가난한 사람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때 내는 본인 부담금을 늘리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딱히 약자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 전 영상에서 열심히 했다고 강변한 4대 사회개혁 시도는 모두 해법을 찾기 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정부는 의대정원 문제로 격화된 갈등은 책임지지도 못한 채, 의료시장 거대 공급자를 제어할 통제력은 점점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의료의 공공성은 안중에도 없었고, 갈등을 매듭지을 능력도 없었던 윤석열 정부 때문에 응급실을 전전한 사람들, 제때 진료받지 못해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연금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갈등 해소와 합의를 가로막은 정책 사안이란 점에서 독특하다. 2024년 시민공론화에서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노후보장 강화와 점진적 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정안정을 도모한다는 연금개혁 방향이 잡혔고, 게다가 10여년 만에 국회 여야 정당이 합의를 시도하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를 간단히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나중에야 내놓은 윤석열 정부안은 전형적인 세대분할론에 기초하며, 미래 사회경제 상황에 따른 연금액 삭감 방안을 담고 있었다. 다수 국민에게 중심 노후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이 해야 하는 적정한 보장에 대한 문제의식도, 적극적인 방안도 담고 있지 않았다. 미래세대를 위한 개혁이라 하면서 미래세대의 노후보장과 미래 노인빈곤 예방을 위한 적극적 대안이 없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개혁 시도는, 개혁을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만들기보다는 갈등을 심화시키거나 문제를 심화시킴으로써 이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이것도 기여라면 기여라고 할 수 있을까?
의료개혁과 연금개혁을 비롯한 사회개혁을 위한 제대로 된 두 번째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좋은 결론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보다 덜 어리석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공적 영역에서 복지와 사회정책의 역할을 넓힐 필요가 있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경제가 어렵다면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건강, 고용, 노후보장, 돌봄 등 여러 분야에서 시장을 제어하고 삶을 지켜내는 복지를 하고자 한다면 두 번째 기회를 어영부영 보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