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쇄신과 주도세력 교체, 중도층 공략이 필수 과제

2025-07-30

망했던 보수는 어떻게 재기했는가

국민의힘은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지난주 전국지표조사(NBS, 7월 21~23일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17%까지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43%였다. 서너 달 전만 해도 양당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했던 점에 비춰보면 6·3 대선 이후 국민의힘의 하락세가 매우 가파르다. 물론 새 정권이 출범한 직후 야당 지지율이 폭락하는 건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이었던 2022년 5월 1주 한국갤럽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은 41%, 국민의힘은 40%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5월 2주엔 국민의힘 45%, 민주당 31%로 바뀌었고 6월 2주엔 국민의힘 45%, 민주당 29%로 벌어졌다. 2017년 대선 때도 5월 1주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36%, 자유한국당 15%, 국민의당 16%였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5월 3주엔 민주당 48%, 자유한국당 8%, 국민의당 8%로 구도가 급변했다.

정권 초엔 국민의 관심이 온통 새 정부에 쏠리고, 야당은 지지층이 모래알처럼 흩어진 상태라 여야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금 이재명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통해 전 국민에게 현금을 들이붓는 반면 국민의힘은 3대 특검 수사에 엮여 코너에 몰려있다. 지금 여야 지지율이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벌어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박근혜 천막당사로 위기 돌파

중도층 어필 이명박 대선 압승

쇄신없던 홍준표·황교안 참패

36세 이준석 내세운 혁신 성공

정권교체 위해 윤석열도 포용

변화추구 승리, 현실안주 패배

이명박·박근혜 시너지 효과

그렇지만 보수 진영의 미래가 완전히 봉쇄된 건 아니다. 과거에도 몰락했던 보수가 천신만고 끝에 부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국민의힘도 착실히 재활 수순을 밟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2018년 지방선거와 같은 참패는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관건은 국민의힘이 예전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냐는 점이다.

2004년 3월 17대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백척간두의 위기였다. 그해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지만, 여론의 대대적인 역풍을 맞고 총선 대패의 비상등이 켜졌다. 당시 중앙일보가 전국 20개 접전 선거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탄핵 이전인 3월 2~10일 조사에선 한나라당이 11곳에서 1위,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3곳에서 1위였다. 하지만 탄핵 이후인 3월 19~21일 조사에선 열린우리당이 19곳에서 1위로 민심이 급변했다. 4·15 총선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은 잘해야 70~80석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박근혜 의원이었다. 3월 23일 임시 전당대회에서 원 포인트 당 대표로 선출된 박 의원은 곧바로 여의도 ‘호화 당사’를 박차고 나와 여의도 중소기업 전시관 터에 천막당사를 차렸다. 시세가 1000억원이 넘는 천안연수원도 국고에 헌납했다. 탄핵과 차떼기 사건으로 망가진 당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이벤트였다. 최병렬·양정규·하순봉 의원 등 구주류의 핵심이었던 중진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거 용퇴를 선언했다. 여기에 열린우리당의 실수가 겹치면서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121석의 호성적을 거뒀다. 비록 1당은 열린우리당에 내줬지만, 정권 교체의 기반은 다진 셈이었다.

이후 당 밖에선 이명박 서울시장이 수도이전 반대와 청계천 복원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표가 대구·경북과 보수층이 핵심 지지세력이라면, 이 시장은 수도권과 중도층에 강점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갈등도 많았으나 결과적으론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히는 시너지 효과를 내 2007년 대선 때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5·18 묘지서 무릎 꿇은 김종인

2020년 4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도 장래가 암담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를 계기로 쪼개졌던 바른정당 탈당파와 3년여 만에 다시 손잡고 당명도 개정(종전 자유한국당)하며 의욕적으로 21대 총선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는 103석의 대참패였다. 더불어민주당은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입법을 좌지우지했으며, 보수의 존재감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미래통합당은 보수 색채가 강했던 황교안 대표가 물러나고 개혁성향의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서서히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김병민 서울 광진갑 조직위원장, 김재섭 서울 도봉갑 조직위원장 등 80년대생을 비대위원으로 발탁해 인적 쇄신의 흐름을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그해 8월 보수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어 화제를 모았다. 그해 9월엔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꿨다.

보수의 변신 노력은 2021년부터 결실을 보았다. 부동산 급등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진 틈을 타 국민의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국민의힘은 그해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7월엔 2016년 10월 최순실 사태 이후 4년 9개월 만에 정당 지지율 조사(한국갤럽)에서 민주당을 추월했다.

보수의 혁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준 장면은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36세의 원외(院外) 이준석 후보가 관록의 나경원 후보를 꺾고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30대 당 대표라는 건 기존 보수 정당의 정치 문법으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대 사변이었다. 여기에다 그해 7월 대선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하면서 보수의 변화는 정점을 찍었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단죄해 보수의 암흑기를 초래한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국민적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수 진영은 모든 과거를 덮었다. ‘종전 방식’으론 정권 교체가 힘들겠다는 보수층의 위기감과 각성이 김종인-이준석-윤석열로 이어지는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

국민의힘, 내년 지방선거 포기?

과거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보수 재기를 위해 무엇보다 인적 쇄신과 주도 세력의 교체가 필수적이란 것이다.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로 패배한 뒤 5년 뒤에 똑같은 이회창 카드로 대선을 노렸다가 연거푸 실패했다. 자유한국당은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로 대패한 뒤 다시 홍 후보를 당 대표로 뽑아 2018년 지방선거를 치렀다가 사상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8·22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를 뽑을 예정이다. 에이스리서치가 지난 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대표로 누가 적합한지를 묻는 질문에 국민의힘 지지층의 34.9%가 지난 대선의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꼽았다. 이어 장동혁 의원 19.8%, 조경태 의원 11.0%, 주진우 의원 8.8%, 안철수 의원 8.0%의 순서였다. 지난 6월 대선에서 대패한 김 전 장관은 거리로 나섰던 ‘윤석열 탄핵반대’ 진영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김 전 장관이 대표가 되는 건 당의 인적 쇄신과 주도세력(친윤) 교체와는 거리가 먼 결과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2026년 지방선거는 내심 포기한 상태이며, 그 이후에 새 지도부를 꾸려 2028년 총선을 도모할 것이란 말이 그럴듯하게 나돌고 있다.

보수가 재기하려면 중도층 흡수도 절체절명의 과제다. 2007년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압승한 것은 이명박 후보가 중도층 민심에 크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도 박근혜 후보가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해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면서 중도층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2022년 대선 때는 2030 세대에서 영향력이 큰 이준석 대표와 중도층에 지분이 있는 안철수 의원이 윤석열 후보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 윤석열 정권의 몰락은 윤 대통령이 이 두 사람을 내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

국민의힘이 중도층을 잡기 위해선 윤 전 대통령과 분명한 선을 긋고 정책 노선을 왼쪽으로 옮기는 시도를 해야 한다. 언젠가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당내에선 그런 개혁을 주도할 주체가 마땅치가 않다. 대선 이후 김용태 비대위원장,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비슷한 노력을 했지만, 구주류의 벽에 막혀 별무신통이었다.

정당 플랫폼 개혁도 절실하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탄핵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전한길 씨의 입당과 2021년 대선 경선 당시 신천지 개입설이 논란이다. 일부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국민의힘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당의 기반이 허약하다는 방증이다. 당이 소수의 강성 당원이 아니라 전체 민심과 수월히 소통할 수 있도록 경선 시스템을 비롯한 당 운영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는 변화를 추구했을 때 승리했고, 현실에 안주하면 패배했다. 앞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할 국민의힘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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