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기준중위소득이 결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중생보)를 열어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6.51%(4인 가구 기준) 올리기로 결정했다. 복지부는 "역대 최대 인상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준중위소득은 예년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다. 기본사회를 내세운 새 정부의 첫 결정이어서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약자 복지'를 내세우며 4년 연속 역대 최대 인상률을 자랑했다. 2021년까지 1~2%대 인상률에 머물렀으나 5~6%대로 끌어올렸고, 올해 6.42%까지 올라갔다. 새 정부가 더 올릴지, 아니면 어려운 재정 여건을 고려해 낮출지 관심이 집중됐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첫 결정은 0.09%p 높은 6.51%였다.

일각에서는 "내란 논란에 휩싸인 전 정부보다 새 정부의 인상률이 높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반면 중생보 회의에서 "소비 쿠폰 지급 등을 고려해 나라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점을 반영해서 낮게 가야 한다"는 소수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기준중위소득은 흔히 말하는 중위소득과 다른 개념이다. 중위소득을 토대로 가구소득 평균증가율, 가구규모별 소득 차이 등을 반영해 별도로 산정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도입했다. 기초수급자 생계급여, 국가장학금, 아이돌봄서비스, 국민취업제도 등 14개 중앙부처의 80여개 복지 대상 선정기준이다.
이번 인상으로 내년 1월 1인 가구(소득인정액이 0원이라고 가정)의 생계비가 월 76만여원에서 82만여원으로, 2인 가구는 약 126원에서 134만여원으로 오른다. 4인 가구는 195만1287원에서 207만8316원으로 12만7029원 오른다. 노인 일자리 월 수당이 29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절대 적지 않다. 4인 가구의 생계비 최대치가 이번에 200만원을 넘어선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기초수급자 중 생계급여를 받는 사람이 4만 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존 수급자의 수당도 올라간다.
정부는 이와 함께 몇 가지 미세조정을 했다. 기초수급자 대상을 따질 때 청년일 경우 소득 공제를 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늘렸다. 청년의 연령 기준을 29세 이하에서 34세 이하로 완화했다. 또 모든 수급자의 승합차·화물차 적용 기준을 느슨하게 조정했다.
이번에 임차 가구의 주거급여 기준 임대료를 올렸는데, 이 덕분에 주거급여가 월 1만7000~3만9000원 오른다.
이번 결정의 한계도 분명하다. 기준중위소득 인상률 6.51%는 4인 가구 기준이다. 1인 가구 인상률은 7.2%이다. 정부는 "기초수급자의 74.4%가 1인 가구인 점을 고려해 (4인 가구보다 높게) 7.2% 올렸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올해 1인 가구 인상률은 지난해(7.34%)보다 낮다.
이번에 기초수급자 선정 기준선은 손대지 않았다.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소득인정액(재산의 소득환산액 포함)이 기준중위소득의 32% 이하, 의료급여는 40% 이하여야 한다. 2024년 윤 정부 때는 생계급여 기준을 기준중위소득의 30%에서 32%로 올린 적 있다. 기준중위소득 인상 못지않게 기준선 상향의 효과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기준선의 단계적 상향'을 약속했는데, 이번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공약에서 의료급여 대상자 선정 때 적용하는 부양의무자 제도를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는데, 이번에 손대지 않았다.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이 역대 최대인 건 맞지만,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인상률을 산정하는 산식이 있다. 산식대로 하니 14%로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높게 나온 이유가 있다.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기본증가율과 추가증가율을 따진다. 기본증가율은 중위소득의 3년 치 평균 인상률을 말한다. 이게 약 10%로 나왔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기저효과) 때문에 2022, 2023년 소득 증가율이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난해처럼 물가상승률을 동원했다. 이게 2%이다. 추가증가율은 보완장치인데 4.42%이다. 이는 조정할 수 없는 지표이다. 둘을 고려해 조정한 인상률이 6.51%이다. 최근 2026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비교적 낮은 2.9%로 결정된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생보 위원은 "지난해보다 낮게 갈 수는 없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그렇다고 산식대로 나온 증가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너무 높고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소득이나 물가가 14%만큼 올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충안을 찾았다"고 말한다.
산식에 따른 인상률(14%)과 실제 인상률(6.51%)에 차이가 큰 건 문제다. 그렇다고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14% 올리기는 쉽지 않다. 올해 기초생활보장 예산이 21조2500억원(국비 기준)이다. 적지 않다. 다만 제도적 미비점은 개선해야 한다. 산식과 실제 인상률 차이를 조정하는 기준 같은 게 없다. 물가상승률을 사용해서 조정하지만,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기초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성명서에서 "한국의 빈곤선 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이 실제 시민의 소득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동행동은 "정부가 역대 최고 인상률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며 "기준중위소득과 중위소득 격차 해소 약속을 지키기 위한 추가 인상 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한다.
참여연대도 성명에서 "기준중위소득이 현실과 거리가 멀어 빈곤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수급자의 생활고가 계속될 것"이라며 "복지부는 이번 결정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산출 원칙을 지켜 제대로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이재명 정부는 '약한 복지'만을 추진한 윤석열 정부와 분명히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대선 공약인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의 이행 시기와 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