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A씨는 권고사직 제안을 거부한 이후 회사 인트라넷과 공유 폴더에 접근할 수 없었다. 회사는 사무직인 A씨에게 현장으로 강제 인사 발령시킬 수 있다고 통보했다. 업무 지시도 하지 않았다.
직장인 10명 중 3명 가까이가 A씨처럼 정식으로 해고를 통보하지 않고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사실상 해고’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2월 2~11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7%가 사실상 해고를 경험·목격했다고 밝혔다.
유형별로 보면 ‘구두로 해고 또는 권고사직 통보 후 업무 미부여’가 15.3%로 가장 많았다. 사실상 해고를 받은 당사자 자리에 채용 공고를 낸 행위(12.9%), 사무실 출입 비밀번호 변경(11.5%), 사무실 서버 접속 금지(10.5%), 사무실 출입 카드 회수 또는 출입 통제(9.5%), 노트북 등 업무 필수 사무용품 회수(9%), 출근을 물리적으로 막는 행위(7%) 등 순으로 뒤를 이었다.
상시 근로자 수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해고시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고 해고 통지를 서면으로 해야 한다.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해고일로부터 30일 전 해고를 예고하지 않으면 해고 예고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업무상 질병을 이유로 휴업 중이거나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 중인 직원은 해고할 수 없다. 직장갑질119는 사측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사실상 해고 상황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사직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해고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을 신고하거나 내부 부조리에 목소리를 낸 직원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1월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상담 사례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상사에게 신고했더니 상사가 다음날 가해자와 강제로 면담시키고는 ‘이렇게 행동하면 재계약이 안 된다’고 말했다. 면담 이후 업무에서 배제됐고 시스템 접속도 막혔다.
사실상 해고 행위가 있었어도 노동자가 사직서를 내면 해고당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해고도 해고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문 응답자의 50.8%가 ‘노동위원회가 사실상 해고를 해고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양현준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에서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규정을 우회하여 간접적으로 사직을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직서 제출이나 권고사직의 외형을 갖췄더라도 사실상 해고에 해당한다면 해고로 보는 일관된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사실상 해고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를 개선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