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 노린 '철도 노선변경' 범죄에도 땅 주인 30억 받는다

2025-03-19

철도공단 "최적 노선으로 변경, 절차상 문제없어"…보상 추진

보상금 지급 막을 규정 전무…"요식행위에 그친 검증 아닌지 의문"

3조원 규모의 국가철도사업이 거액의 토지수용보상금을 노린 땅 주인의 뜻대로 '토지 앞'에서 '토지 관통'으로 변경됐다.

보상금 30억원 중 10%를 떼어주겠다며 노선 설계 담당자에게 '노선 변경'을 대가로 2억원을 건넨 범죄가 탄로 났음에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풀려난 땅 주인은 이대로라면 애초 의도한 대로 거액의 보상금을 손에 쥔다.

사업시행자인 국가철도공단은 '이들의 범행'과 '노선 변경'을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며 범행을 '설계 담당자의 일탈 행위'로 규정, 관련법에 따른 보상을 추진할 예정이다.

20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 기본설계안(전체 길이 8.126㎞)은 A(51)씨가 소유한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토지 바로 앞'을 지나갔다.

춘천에서 속초까지 93.7㎞를 연결하는 동서고속화철도는 총 8개 공사 구역으로 나뉘어 사업이 진행 중이다.

철도공단은 노선 기본설계 후 춘천 의암호와 설악산국립공원을 통과하는 1·7공구는 공사 기간과 난이도를 고려해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시행하는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추진하고, 8공구 등 나머지 6개 공구는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타운하우스 분양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A씨는 자기 땅 앞으로 노선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대로 확정된다면 소음 등으로 인한 땅값 하락은 물론 타운하우스 분양 실패를 염려해 그해 2021년 12월께 8공구 실시설계 용역회사의 상무이사 B(55)씨에게 노선 변경을 청탁했다.

노선 설계에 있어 핵심 역할을 맡았던 B씨는 기본설계안을 보여주며 "토지를 관통하는 쪽으로 노선 변경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2022년 2월 9일 A씨는 B씨에게 1억원을 건넸고, 같은 달 22일 외부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는 A씨 토지를 관통하는 실시설계안(전체 길이 8.120㎞)이 적정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A씨가 원한대로 추진된 셈이다.

기본설계안과 견줘 변경된 구간은 A씨 땅을 포함해 총 5㎞가량. 그 뒤로 A씨는 3월 2일 한 차례 더 1억원을 건넸다.

두 사람의 불법행위로 인해 노선이 변경됐을 개연성이 상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지만, 철도공단은 A씨 토지를 관통하는 실시설계안은 공단 설계프로세스에 따라 정상적으로 추진됐다는 입장이다.

노선 선형이나 경제성 등 측면에서 최적의 노선임이 외부 전문가 자문을 통해 확인돼 실시설계안을 확정한 것으로, 애초에 B씨가 개입해서 바꿀 수 없던 것인데 마치 바꿔주는 것인 양 돈을 챙겼다는 설명이다.

이에 철도공단은 국토교통부로부터 2024년 10월 실시계획 승인을 받아 노선을 확정하면서도, A씨 땅을 지나는 '문제의 460m' 구간만 A씨와 B씨가 재판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제외했다.

철도공단은 현재 460m 구간에 대한 승인을 관계 기관과 협의하고 있으며, 확정 시 A씨의 토지에 대한 손실보상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추진할 예정이다.

토지보상법은 '거짓이나 그 밖에 부정한 방법으로 보상금을 받은 자 또는 그 사실을 알면서 보상금을 지급한 자는 물론 미수범까지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토지 보상 과정에서의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일 뿐 이번 사건처럼 실시설계 단계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까지 처벌하는 조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노선 변경을 꾀한 A씨에게 거액의 토지수용보상금이 지급된다는 이야기로, 정확한 보상금액은 추후 감정평가를 거쳐 확정된다.

실시설계 용역 과정이 비리로 얼룩졌음에도 2027년 개통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자 외부 전문가 의견과 절차적 정당성에 기대어 결국 범죄자의 배를 불리는 상황을 방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법률 자문 결과 실시계획 승인 고시 이후 손실보상에 대해서는 토지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하는 데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미지급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해 계약심의위원회를 거쳐 B씨 회사에 입찰 참가 제한 등의 제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은 "불법 행위가 일어난 사실을 알았다면 전면 재검토를 해야 했다"며 "외부 전문가에 자문했다고는 하나 형식적으로만 진행하고, 최적의 노선인지 철저히 검증했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면서도 460m만 빼놓고 노선을 확정한 것도 모순이다. 결국엔 460m까지 포함해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개인 일탈로만 규정하고 실시설계 회사를 제재할 게 아니라 아예 손을 떼게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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