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신세계 “임대료 40% 깎아달라”
인천공항공사 “경쟁입찰 때 써낸 금액”
면세점 철수·민사소송·재입찰 가능성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놓고 국내 면세업체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인천공항에 입점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업체들은 과도하게 높은 임대료를 인하해달라며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반면, 해당 임대료는 2년여 전 경쟁입찰 당시 업체들이 직접 써내 낙찰받은 금액이라며 인하는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임대료 조정이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면세점 철수나 민사본안 소송, 재입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은 면세점 재입찰 시 형성될 적정한 임대료 수준에 대한 감정을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했다.
이번 감정촉탁은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공항 제1·2여객터미널 면세점 중 화장품·향수·주류·담배 구역(DF1, DF2) 임대료를 40% 인하해달라는 조정 신청서를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6월30일 1차 조정에 이어 2차 조정기일은 오는 14일로 잡혀있다. 법원은 이날 회계법인이 산정한 적정 임대료에 따라 인천공항공사와 이들 면세점 간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임대료 감면을 요구하는 것은 최근 업황 부진으로 적자 폭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고환율 등의 영향으로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
매출 의존도가 80%에 달했던 중국인 관광객 수요가 줄어든 데다 올리브영과 다이소·무신사 등으로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분산되면서 면세점은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가 끝나면 이전처럼 정상 영업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고객 객단가가 많이 줄었다”며 “매달 몇 십억씩, 연간 몇 백억 적자가 나면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 임대료는 원래 고정 금액이었다가 2023년 7월 여객수 연동 방식으로 바뀌었다. 인천공항 전체 출국객 수에 여객 1인당 임대료를 곱해서 산정·지급하는 방식이다. 지난 6월 인천공항 출국객(296만7449명)을 기준으로 두 회사가 매달 인천공항공사에 각각 지불하는 임대료는 340억원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공항 면세점 월 매출을 600억~650억원으로 추정하는데, 이들 면세점은 사실상 매출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면세사업권은 10년짜리로 운영 기간이 8년이나 남아있다. 인천공항은 4단계 확장 공사를 마쳐 이용객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신라·신세계면세점에서 ‘철수 검토’ ‘셧다운’ 등의 배수진을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고액이라고 호소하는 이 임대료는 사실 2023년 4기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 입찰 당시 두 회사가 입찰제안서에 쓴 금액이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DF1, DF2 사업권에 여객 1인당 임대료를 각각 8987원, 9020원을 써냈다.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했던 최저수용액은 DF1 5346원, DF2 5617원으로 이보다 각각 68%, 61%나 높은 금액을 내놨던 것이다. 그 결과 두 회사가 중국면세그룹 CDFG와 롯데면세점을 제치고 사업권을 따냈다.
당시에도 신라·신세계면세점이 과감한 베팅을 했다며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지적이 있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두 면세점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절박한 심정은 알겠지만 과한 요구다.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며 “공항 면세점이라고 모두 적자에 허덕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DF5 구역을 운영 중인 현대면세점의 경우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2935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면세점은 입찰 당시 여객 1인당 임대료로 최저수용액(1056원)보다 소폭 높은 1109원을 써냈다.
이미 임대료 부담으로 공항에서 철수한 사례도 있다. 롯데면세점은 2015년 인천공항 사업권을 따냈다가 중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 여파로 매출이 급락하자 임대료 조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2018년 매장 일부를 철수했으며 위약금도 1879억원을 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천공항공사의 입장은 단호하다. 인천공항공사 고위 관계자는 “로펌 2곳에서 법률자문을 받았는데, 임대료 임의 조정은 배임뿐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2차 조정기일은 조정 여부를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 조정률을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부득이 불출석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찰 당시 그 금액을 써냈을 때는 경영에 어려움이 닥쳐도 감당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라며 “반대로 다음 입찰 때도 고액 베팅으로 낙찰받은 뒤 ‘영업환경이 달라졌다’ ‘지난번처럼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한다면 그것이 공공기관으로서 공정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