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기업회생신청 사태와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계기로 사모펀드(PEF)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금융권에서조차 차입매수(LBO)와 피인수기업 자산 매각 등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을 방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상법 개정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홈플러스와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 과정에선 국내 기업 장악이 손쉬운 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PE)를 견제하기 위한 법과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시장 및 규제 환경을 감안한 PEF 규제 접근 방식' 보고서를 통해 "작년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과 올해 초 홈플러스 회생신청을 기점으로 PEF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PEF 규율체계 보완은 시장 평판과 신뢰를 제고하고 시장규율을 강화해 PE와 PEF의 한 단계 도약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임 위원은 이어 "외국계 PE는 펀드 투자자(LP)에서 한국 투자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쉽게 자본시장법 적용 범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사모펀드의 과도한 차입매수 문제는 MBK의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부상했다. 홈플러스 대주주 MBK는 2015년 홈플러스 인수에 7조2000억원을 투입하면서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5조원(70%)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받아 인수대금을 확보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상황에까지 몰린 이유를 두고 국회 등 정치권과 노조, 산업계에서는 과도한 차입금에 따른 상환 부담이 피인수기업 홈플러스에 전가되면서 기업의 위기가 심화되고,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전개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MBK는 빚을 갚기 위해 홈플러스가 보유한 핵심 점포 등 부동산을 대거 처분하고 상환전환우선주(RCPS) 원리금을 받아내는데 주력했고, 이 때문에 홈플러스 사업 경쟁력이 저하되고 재무 위기가 심화돼 기업회생 신청을 촉발했다는 지적이다.

MBK는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 과정에서도 차입매수를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7개월간 MBK가 고려아연 지분 취득에 투입한 자금 1조5657억원 중 75%인 1조1775억원을 NH투자증권에서 담보대출을 실행해 조달했다.
업계에서는 거액의 상환 부담이 고려아연에 전가되면 재무건전성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전략광물 공급망 약화와 주요사업 분리매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 위원은 보고서에서 "PE 시장은 결국 대형 기관투자자(LP)와 운용사(GP) 간 사적계약에 기반해 규율되는 시장"이라며 "규율체계 정비 시 국민연금, 사학연금, 보험사, 공제회, 산업은행, 캐피탈사 등 PE 시장의 주요 LP들이 효율적·효과적으로 GP를 규율할 수 있는 기반 형성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통상적으로 LP들은 위탁운용사 선정기준과 출자규약을 통해 GP를 규율한다. 지난달 국민연금은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기준을 개편하고 평가항목에 '운용수익의 질'을 추가했다. MBK가 일으킨 홈플러스 사태와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를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연금은 올 2월 MBK 6호 블라인드 펀드에 약 3000억원 출자를 확정하며 '적대적 M&A 투자 불참' 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했다. 올 3월에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산하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 또한 MBK 6호 펀드에 출자하는 대신 적대적 M&A 투자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임 위원은 "PE는 궁극적으로 GP와 LP 간의 사적 계약에 기반해 움직이는 존재"라며 "펀드 성과와 비용에 관한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민연금, 사학연금, 보험사 등 주요 LP들이 효과적으로 GP를 규율하는 시장 중심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위원은 또 PE 규제를 위해 개별 산업에 관련한 법들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PE가 대중교통이나 요양시설 등 민생 밀착 산업에 진출해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거나 가격을 무리하게 올려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를 근거로 들었다.
이 때문에 각 산업에 적용되는 법을 통해서도 PE의 일탈 행위를 막고, 사회적 필수 서비스에 해당하는 영역은 M&A 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임 위원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과 산업계 등에서 국가핵심기술과 국가기간산업 등 경제안보나 국익차원의 사안 역시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