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안 수필가
내가 요즘 좀 아프단 말이야. 네가 누웠다 서거나 걸을 때 내가 아야야 비명 지르는 소리 들었지? 그럴 때마다 너도 얼굴을 찡그리잖아.
내가 네 나이만큼 아니 돌 지나 걸음마 시작 이후로 널 업고 다닌 상머슴으로 섬긴 것만큼은 너도 인정해야지. 난 널 받드느라 지게꾼처럼 허리가 휘고 굳은살투성이가 됐지.
그동안 이리저리 뛰고 오르내리며 혹사해 병이 생겼지만 엄살을 안 부려서 넌 나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 이건 일종의 화병이기도 해. 내가 성내면 네 존재도 뒤흔들리는 건 알고 있겠지?
발바닥으로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야. 양말에 신발까지 이중 감옥에 갇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햇빛도 못 보잖아. 거기다 인체 중 가장 많은 땀샘을 가졌으니 시큼한 고린내가 온몸에 배어 있지.
평생을 땀범벅으로 곰팡이 창고에서 지내는 기분을 알아? 시간이 지날수록 넌 무게가 점점 늘고 걸음이 둔탁해지더군.
탄력 있던 발꿈치도 덩달아 얇아졌고. 내가 진작부터 푹신푹신한 밑창을 요구했는데도 넌 발등과 굽만 보고 신발을 골랐어. 이젠 신발장을 열고 날씬하고 예쁜 구두를 보며 한숨 쉬지만 내가 보기엔 불량식품처럼 쓸데없는 유혹거리일 뿐이야.
난 둔한 듯 보여도 엄청 예민해서 촉감을 손바닥만큼 민감하게 포착하지. 바닥이 미끄러운지 딱딱한지 울퉁불퉁한지 신발을 신었어도 다 느끼고 너에게 신호를 보내잖아.
이렇게 항상 신경 곤두세우느라 피곤하지만 너를 위해 참는 거야. 너도 이젠 산이나 돌길은 피하고 포장된 길로만 주로 다니더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풀밭과 모래사장이야. 풀밭은 걸을 때마다 구름 위에 뜬 듯 날 미소짓게 하지. 모래사장은 또 어떻고.
네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날 내놓고 즐거워하던 때가 생각나. 난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따끈따끈한 모래와 장난을 쳤지. 항상 맨발로 다니는 동물이 잠시 부러웠어. 다칠 위험도 있지만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잖아. 운이 좋으면 발자국 화석으로 나를 영원히 기록할 수도 있고. 그런 거창한 욕심은 이제 접었고 아프지나 않으면 좋겠어.
너도 요즘 내 비위를 맞추느라 노력 중인 거 알아. 주무르고 눌러주고 쓰다듬고 로션도 발라주니 황송하지. 내가 불가촉천민인 양 만지길 꺼리더니 너도 철이 드나 봐.
자세히 쳐다보더니 족상 보는 법을 검색하고 행운과 부귀선이 있나 족금까지 들여다보는 것도 관심의 증거겠지. 가끔 족욕을 할 땐 온몸이 녹아내리고 긴장이 풀어져 널 용서할 마음이 땀구멍마다 솟는다니까.
날 손바닥만큼만 대접해 줘. 기어다닐 때만 해도 같은 처지였는데 차별하면 기분 나쁘잖아. 내가 화를 다 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나도 갑에게 을질 좀 해보자고. 그래야 너도 한 걸음마다 내 눈치를 볼 거니까. 어쨌거나 우린 한 팀이니 화이팅! 발가락이 으쌰으쌰, 손뼉 아닌 발뼉이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