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끄러운 얼음 잔디 문제는 상암벌(서울월드컵경기장의 애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 곳에선 선수들의 발목을 잡는 잔디에 A매치(국가대항전)도 열리지 않는다. 잔디 관리에 최선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에 생긴 일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은 최근 매끄럽지 못한 운영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홈페이지 시민의 소리에는 잔디와 관련된 민원이 지난 3일부터 200건에 가깝게 올라왔다.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K리그1 3라운드가 열악한 잔디 상태에서 진행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 서울 골잡이 제시 린가드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엉망진창인 잔디 사진에 골프 관련 이모티콘을 덧붙인 것이 기폭제가 됐다. 린가드는 방향 전환을 하다가 푹 팬 잔디에 발목이 걸려 넘어져 통증을 호소했다.

한 시민은 민원 게시글에서 “지난해 시설공단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약 8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당시 이 수익금의 10%(실제로는 2억 5000만원)도 잔디 관리에 쓰지 않으면서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가 2025년 예산을 늘리고 시설 관리 투자를 증액하겠다고 했고, 별개로 시설공단도 세밀한 관심과 관리를 약속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는데 5개월이 지난 지금 어떤가? 여전히 잔디는 푹푹 파이고, 선수들은 부상 위험에 노출됐다. 그걸 보는 관객은 불안한 마음이다. 시설공단도 할 말은 있겠지만 핑계는 그만 둘러대시고 제발 일좀 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설공단도 운영처를 통해 동절기 잔디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배경을 설명하는 한편 이달 내로 잔디 교체에 나서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좀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설공단이 몇 년째 잔디 관리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반 년째 A매치가 열리지 않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9월 손흥민(토트넘)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불량한 잔디 상태를 지적하자 10월 이란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4차전 개최지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용인미르스타디움으로 바꿨다. 3월 재개되는 3차예선 7~8차전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아닌 고양종합운동장(20일·오만)과 수원월드컵경기장(25일·요르단)에서 열린다. 요르단 국가대표로 한국을 상대할 것이 유력한 서울 수비수 야잔은 “이유가 있어 수원에서 A매치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팬들의 우려는 날씨가 풀리는 봄이면 시작되는 공연 및 행사에도 쏠린다. 4월 30일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스프링페스타가 예고되어 있다. 시설공단은 이날 행사에서 잔디 보호를 우선하겠다는 약속대로 관중석 E구역에 스테이지를 마련하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 객석도 관중석 N, W, S구역만 연다. 2023년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마지막 행사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면서 무대와 객석을 그라운드에 마련했던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시설공단이 팬들의 신뢰를 찾고, A매치까지 열려면 적극적인 투자로 잔디를 살리겠다는 의지까지 보여줘야 한다. 겨울철 얼음 잔디가 지나갔다고 방심한다면 여름철 논두렁 잔디로 바뀔 뿐이다. 시설공단이 잔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해결할 수 있을지 팬들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