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법 전문가인 주디 퍼지 캐나다 맥매스터대학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관련해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으로서 국제법과 국제노동기준을 존중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며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결사의 자유에 한단계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퍼지 교수는 세계적인 노동법 전문가이면서 한국의 노동 문제에 관심이 높은 학자다. 그는 처음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1987년 한국의 노동자 대투쟁이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보면서 자주적 노조운동이 노동법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생각하며 많은 연구를 지속해왔다. 2025년 전세계 노동법연구기관들이 모인 ‘노동법연구네트워크’(LLRN)가 수여하는 노동법 연구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2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노란봉투법 통과도 중요하지만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퍼지 교수는 “노조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노조가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며 “노동법은 항상 노조 운동의 요구를 따라가기 때문에 비정규직·특고 등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도 연방헌법상에는 결사의자유가 보장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민간 부문 노동자들은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비임금 노동자는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 현재 프리랜서, 특고 등 비임금 노동자 수가 860만명을 넘어섰다. 캐나다도 1990년대부터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가 급증했다. 특히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캐나다 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그 수가 크게 증가했다.
비임금 노동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관련해 퍼지 교수는 “노동법 보호를 확대하는 첫걸음이 될지, 끝이 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법은 노동자를 구분하고 정의하는 문제를 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냐, 아니냐’의 문제만 있었다면 이제는 ‘근로자냐, 근로자는 아니지만 기본법 적용을 받는 사람이냐, 그 밖이냐’ 등 경계의 문제와 법적 분쟁을 낳는다. 또 사용자들이 ‘근로자’와 맺는 근로계약 대신 이러한 기본법을 적용하는 계약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바림직한 모델로 스웨덴의 사례를 소개하며 “스웨덴은 법이 좋아서라기보다 노조 조직률이 좋고 단체협약 적용률이 70% 이상이기 때문에 산업별 협약으로 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도 보호를 받는다”고 했다.
퍼지 교수는 한국의 단체교섭 법제가 기업별 교섭을 사실상 강제하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그는 “노조가 잘 조직되고, 단체협약을 통해 비정규직 등을 보호하는 보텀업(bottom up) 방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의 최저기준을 높여야 한다”며 “부문별로 광범위한 단체교섭, 산업별 단체협약을 통해 아래를 위로 올려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퍼지 교수는 지난해 한국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한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기본적으로 차별”이라고 했다. 그는 “가사노동자의 상당수는 여성이고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성별과 국적에 따른 차별인게 너무 분명하다”며 “ILO의 고용상 차별금지 협약에 명백히 반한다”고 했다. 이어 “아이들에게도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후세대에게도 좋지 않다”며 “캐나다와 영국 등이 1990년대 많은 논쟁 끝에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법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왔는데, 지금 한국의 논쟁은 이를 역행하고 퇴보시키는 흐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