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해와함께 창립 60주년 기념 사진집 <사이·너머, 60년의 대화, 1965~2025>(대화출판사)의 ‘대화’ 뜻을 가장 잘 설명한 이 중 하나는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다. 비대칭에 좌우 크기도 다른 장구를 본떠 만든 이 재단 로고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비대칭적인 음악의 구조가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대화는 서로 같은 사람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끼리 하는 겁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 변화를 도모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 장구의 비대칭 이론이죠. 대화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해와함께는 1959년 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라는 작은 모임으로 출발했다.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로 정식 창립한 건 1965년 5월 7일이다. 당시 “기독교의 사회 참여와 교회와 사회의 대화,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를 극복하는 인간화”를 위한 대화운동을 내세웠다. “아테네 교외 아카데모스의 숲속에서 대화하며 진리를 탐구하던 정신을 현대의 정황 속에서 살려보려는 뜻”의 아카데미 운동을 한국에 적용한 게 대화운동이다. 여해(如海) 강원용 목사(1917~2006)는 1962년 독일 아카데미 운동의 창시자 에버하르트 뮬러 박사와 만난 뒤 이 운동을 구체화했다. 여해와함께는 “시기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쟁점이 되는 이슈를 내걸고 해당 분야의 인사들을 초청, 대화를 나눔으로써 분열과 대립의 원인을 찾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왔다.

대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종교 간 대화 모임이다. 강 목사와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 모임 초창기부터 강 목사가 임종할 때까지 함께 활동했다. 법정 스님 등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목사)은 “예수님은 일방적 설교가 아니라 항상 대화했다. 예수님은 그 당시 대화할 수 없는 사람들, 대화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대화를 했다. 대화는 내 말이 먼저여서는 안 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데서 시작된다”며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종교 간 대화 모임을 이렇게 평가했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교리적 주장의 종교적 대립이나 갈등과는 달리 유일하게 타 종교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대화였기에 종교 간의 평화 문화를 조성했다. 그래서 종교인 평화회의는 종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문제, 더 나아가 남북의 평화적 관계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은 원광대 원불교 학과 재학 때 이 대화 영향으로 개신교 신학생, 가톨릭대학교 예비 신부 신학생, 동국대 불교학과 학생들과 함께 종교 간 대화운동을 이어간 일을 떠올렸다. 박 전 총장은 “어떤 종교든 일단 몸을 담고 있으면 독선이나 도그마에 빠지기 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울타리를 활짝 열고 종교 간 대화운동을 전개한 것의 영향은 단순히 종교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사회가 오늘날의 성숙한 사회로 오는 데도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진집은 인터뷰집이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대화인’은 122명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세 분야로 나누어 인터뷰이를 선정했다.
각 분야 전문가 89명이 각각 ‘종교 간의 대화’ ‘한반도 평화’ ‘민주화, 양극화 해소, 인간화’ ‘성평등문화와 여성의 인간화’ ‘대화민주주의와 정치개혁’ ‘사회개혁-방송개혁, 교육개혁, 시민사회교육’ 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이어령 전 장관, 한승헌 변호사, 김지하 시인 등 초창기부터 여해와함께를 도와준 작고 원로 33명의 사진과 어록도 실었다.
여해와함께는 5월 중순부터 평창동 대화의 집에서 기획 전시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