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 김새론이 배우 김수현에게 보냈다는 메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가족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청춘스타들의 사회적 고립감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짐작이 된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연예계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사회자본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 김새론과 김수현의 교제 여부가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문자 메시지를 보면 김새론은 김수현을 믿고 의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음주운전 사고로 200억 원에 이르는 손해 배상 소송을 당했을 때 김수현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에 김수현이 7억 원에 이르는 큰돈을 주었다. 물론 그냥 준 돈이 아니라 빌려준 돈이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연락이 끊기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에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그런데 소속사에서 이 돈을 갚으라고 갑자기 내용증명을 보내자 매우 당황했던 것 같다. 더구나 사정을 봐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도 김수현이 아무 응답이 없어 더욱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해결해야 할 돈이 7억 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이 짊어지게 된 200억 원이 있었다. 변압기를 파손하고 가게에 피해를 줬다고는 하지만, 200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액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김새론이 일반인이 아니라 유명 스타였기 때문에 이런 무리한 손해배상액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손해배상액을 소속사에서 충분히 조사하고 검토했는지 의문이 든다. 전반적으로 소속사는 김새론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간 설리와 구하라도 소속사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다. 심지어 악플에 적극적인 법적 대응도 해주지 않았다.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사회적 고립감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이 줄어 관계 형성이 어렵고 부정적인 심리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넣는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청년이 자기 일을 하지 못하면 자아실현의 기회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고립, 우울, 좌절을 느끼고 이것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기혼자보다 의지할 데가 없는 미혼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적용해보면 김새론의 사례는 전형적이면서도 상황이 더 안 좋았다.
김새론의 삶은 화려한 것 같았으나 한순간에 모든 이에게서 단절됐다. 소속사는 물론이고 믿었던 지인마저 자신을 외면하자 사회적 고립감이 더 커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부터 해온 연기자 생활을 아예 못하는 상황이 절망감을 안겼을 것이다. 제작한 영화가 자신 때문에 개봉도 못 했으니 다른 이들에 대한 죄책감도 가중되었을 법하다. 도와주는 이는 없고 어쩌다 올리는 SNS조차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가늠할 수 없는 규모의 채무가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었다.
한국 연예계에 변화가 필요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청춘스타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싸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냉혹하게 외면하는 염량세태의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퍼트넘(Putnam)의 주장처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우리 연예계에도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 자본의 구성요소는 네트워크 연결망, 신뢰, 호혜성 등이다. 네트워크 연결망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연예계는 단순 접촉 빈도가 높기에 이런 점이 취약하다. 신뢰는 사람 자체를 믿고 조건에 상관없이 중시하는 관계 가치다. 유명세나 경제 가치와 관계없이 믿고 협력할 수 있는 관계가 기초가 돼야 한다. 호혜성은 특정 집단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돕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상부상조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울 때 도울 수 있어야 불행한 일을 막고 서로 상생할 수 있다. 아무리 탄탄대로를 걸으며 승승장구해도 위기는 언젠가 오는 법이다.
스타들이 이러한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무방비로 내팽개치기 일쑤다. 개인과 소속사 중심으로 각자도생하기보다는 한국 연예계라는 자부심 있는 집단의 일원으로 서로 믿고 의지하며 돕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성년 청춘들이 언제까지 희생될 순 없다. 선배들이 우선 나서는 모습이 필요하다. 한국의 스타는 이제 세계적으로 소중한 살아 있는 문화 자원이자 국보라 할 수 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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