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재래식 언론’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쓰이기 시작한 이 표현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여권 성향의 ‘빅 스피커’들이 많이 쓰더니 이재명 대통령도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 표현을 꺼냈다. 그는 “요즘은 ‘재래식 언론’이라고 그러던데 특정 언론이 스크린해서 보여주는 것만 보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럴 때는 소위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면서 필요한 정보만 전달하고, 필요하면 살짝 왜곡하고, 국민이 그것밖에 못 보니까 많이 휘둘린다”면서 “지금은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 않냐. 제가 말하는 이 장면도 최하 수십만명이 직접 보게 될 거다”라고 했다.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을 못 믿겠으니 생중계를 통해 국민에게 다이렉트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기성 언론’이나 ‘레거시 미디어’를 대신하는 표현이지만, ‘재래식’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재래식 화장실, 푸세식 같은 연상을 불러일으키며, 낡고 곧 사라져야 할 무엇처럼 들린다.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규정한다. 전통 언론을 재래식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머지 미디어는 암묵적으로 ‘신식’이 된다. 기성 언론은 구태로 밀려나고, 디지털 플랫폼 위의 매체들은 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존재가 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가 곧 언론의 진보를 담보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언론의 본래 가치는 비교적 분명하다. 사건의 경중을 판별하고 진실을 확인해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누가 이 역할을 더 성실하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신뢰와 영향력이 쌓인다. 플랫폼이 종이냐, 유튜브냐는 본질적인 기준이 아니다.
실제로 신식과 재래식의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다. 디지털의 옷을 입은 일부 미디어는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사실을 오도하며, 전통 언론이 지녀온 문제적 관행을 새로운 형식으로 되풀이하기도 한다. 반대로 여전히 기본에 충실한 전통 매체들도 존재한다. 또한 어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지만 어떤 언론은 권력과 거래한다. 이러한 차이는 재래식과 디지털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
‘재래식 언론’이라는 표현이 위험한 이유는 수많은 언론을 하나의 말로 묶어 폄하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언론 전반에 대한 냉소와 혐오는 비판의 초점을 흐리고, 결국 시민의 판단 능력을 약화시킨다. 필요한 것은 재래식과 신식을 가르는 언어가 아니라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을 가려낼 기준이다.
이 극단화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식 플랫폼이 아니라 좋은 언론이다. 사실을 확인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이 있을 때, 우리는 왜곡되지 않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언론의 영향력은 조회 수나 구독자 수가 아니라 사회에 어떤 정보를 남겼는가로 평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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