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상회화 4인전’, 우리는 마음과 기억으로 본다

2025-02-17

“자연은 절대로 지루할 틈이 없고, 끝없이 매혹적이다.”

2023년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7)를 서면으로 인터뷰했을 때 그가 한 말입니다. 그림을 통해 자연에 대한 경이감을 표현해온 그에게 “자연이 언제부터 당신에게 중요한 주제였냐”고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요크셔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늘 자연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두고두고 떠올려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입니다.

최근 서울 삼청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구상회화 4인전: 윤중식, 박고석, 임직순, 이대원’(23일까지)을 보며 그 말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추 역할을 해온 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인 1970~80년대의 작품을 소개하는데요, 이 예술가들이 평생 무엇에 매혹돼 작업했는지 또렷이 보여줍니다.

박고석(1917~2002)에게 경외의 대상은 산이었습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뒤 그는 1950년 초반엔 ‘범일동 풍경’ 같은 황량한 도시 풍경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나이 오십 넘어 1960년대 후반부터 그는 북한산·설악산·도봉산·지리산을 직접 오르며 줄기차게 산을 그렸습니다. 투박한 윤곽선, 강렬한 색, 두터운 유화 물감으로 그려진 산들은 작은 캔버스 밖으로 청명하고 영묘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윤중식(1913~2012) 역시 굵은 윤곽선과 강렬한 색을 썼지만, 그의 작품은 힘보단 온기를 전한다는 점에서 결이 또 다릅니다. 평양 출신으로, 대동강, 석양, 농촌 풍경 등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깔렸습니다. 노랑과 주홍, 황토색이 주조를 이루는 석양빛은 그 애틋한 감정의 온도에 가깝습니다.

‘농원의 화가’ 이대원(1921~2005)도 있습니다. 1950~60년대 모노크롬 경향이 주류일 때,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주변의 산과 들, 과수원을 계절마다 다른 색채로 담아냈습니다. 그의 화폭은 총천연색 불꽃이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짧은 붓 터치로 피워낸 꽃과 잎, 풀과 나무가 원색으로 이글거리며 타오릅니다.

한편 임직순(1921~1996)에게 생명력 탐구의 대상은 자연 풍경, 꽃과 여인이었습니다. 소재는 늘 한결같은데, 그 안에서 독특한 색감으로 대상의 존재감을 표현하는데 탁월했습니다.

호크니의 말대로,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는 그것을 각자 마음으로 보고 기억합니다. 구상 회화의 매력도 거기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올해로 55주년을 맞이한 현대화랑이 그동안 그들과 맺어온 인연을 기념하며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더 주목받고 재조명돼야 할 한국 미술의 역사를 만나볼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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