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은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다. 2003년 정부 보고서는 ‘1947년 경찰의 3·1절 발포 사건을 시작으로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진행된 역사’라고 했을 뿐 4·3의 성격, 역사적 평가는 규정하지 않았다. 발생할 수 있는 학살의 모든 유형이 망라됐고 미군정·정부·토벌대·무장대 등 그 누구도 주민 학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건이라서다. 4·3을 보는 상반된 시선은 작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에도 등장한다. 주인공 상수의 사촌형은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지만, 서북청년단 출신 고모부는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군경을 옹호한다. 이처럼 수난과 항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4·3의 현실은 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주 곳곳에 선연한 4·3의 피와 비명 흔적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다. 억울하게 목숨 잃은 3만여명의 희생자들, 그리고 빨갱이 가족 누명을 쓴 채 숨죽여 살아온 유족들. 누가 이들의 고통 앞에서 학살의 명분을, 이념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겠는가. 현기영은 “죽은 자를 위해 증언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했고, 작가 한강은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이라고 했다. 4·3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려면 4·3의 비극과 마주해야 한다는 호소나 다름없다.
4·3의 비극은 국가 폭력이 본질이다. 남로당 무장대도 학살 책임을 벗어날 수 없지만 미군정, 이승만 정권에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을 돌려야 한다. 무장대의 ‘남한 단독정부’ 반대 시위를 제압하려 서북청년회를 투입해 대대적인 토벌전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장본인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0년 <제주 4·3 추가 진상보고서>는 민간인 사망자 78.7%가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이승만 정권은 사태 진압을 이유로 1948년 11월17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국회 프락치 사건’을 만들어 국회의원들을 잡아들였다.
‘청산되지 않은’ 국가폭력은 지난해 12월3일 대물림됐다. 4일 윤석열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이 역사의 법정에 선다. 그 국가폭력을 몰아내지 않는 한 우리는 4·3의 상주가 될 자격도, 4·3을 제대로 부를 수도 없다. 윤석열 이후 만들 새 세상을 위해서라도 4·3과 작별하지 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