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요가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대중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정도다. ‘전통가요’ ‘뽕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트로트는 1980년대 들어 포크와 발라드, 록 음악 등 젊은 음악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비주류로 밀려 나갔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개인의 스타 영향력을 갖고 트로트계의 중반을 지키던 이름들이 있었다. 그 이전 세대 작곡가와 문하생의 형태로 철저히 도제시스템으로 유지되던 판을 깨고 조금 더 대중적이고 친근한 트로트를 구사하던 이름들이다. 바로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리던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다.
이들 중 지난해 맏형이었던 현철이 7월 유명을 달리했고, 7일 결국 송대관도 별세하고 말았다. 이들 중 당시의 영광을 기억하던 이름은 태진아와 설운도 둘로 줄었다.
송대관은 7일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전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전국노래자랑’에 얼굴을 보일 정도로 80을 코앞에 둔 나이에도 정정함을 과시했던 송대관은 최근 며칠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졌고, 이날 아침에는 통증으로 응급실을 찾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했다. 입원 후 얼마 되지 않아 심장마비 증상으로 결국 송대관은 고인이 됐다.
그에 앞서서는 현철의 별세 소식이 있었다. 2020년 초반 뇌경색과 경추 디스크 수술의 후유증으로 투병하던 그는 7월15일 밤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4대천왕 중 첫 고인이 된 인물이었다. 그의 영결식은 첫 대한민국 가수장으로 치러지기도 했다.
현철과 송대관, 태진아와 설운도는 다 인생역정은 다르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철은 1980년 현철과 벌떼들이 해체한 후 솔로로 전향해 1982년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과 1983년 ‘사랑은 나비인가봐’가 히트하며 스타로 올라섰다.
송대관은 1975년 ‘해뜰날’이 유행해 인기를 얻었다 1980년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 자취를 감췄지만 1989년 ‘혼자랍니다’로 재기에 성공했다. 태진아는 비슷한 시기인 1989년 데뷔 16년 만에 낸 ‘옥경이’, 이듬해 낸 ‘거울도 안 보는 여자’가 히트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설운도는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을 대표하던 ‘잃어버린 30년’이 1983년 크게 히트했다.
이들의 특징은 시 구절에 기반했던 과거 선배들의 스타일에 벗어나 조금 더 직관적인 가사와 후크송을 방불케 하는 멜로디 그리고 디스코나 삼바, 록장르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으로 넓힌 대중성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이들의 인기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면서 트로트의 침체 또는 세대교체의 부진을 상징하는 모습이 되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등장한 장윤정과 홍진영으로 대표되는 ‘뉴 트로트’ 그리고 2020년대 등장한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이후 생겨난 트로트 새 전성시대 이전까지 트로트계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들도 고령으로 인한 건강악화는 피할 수 없었다. 현철은 만성적인 허리통증에 시달렸고, 송대관 역시 갑작스럽게 찾아와 병마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4대천왕 중 현철과 송대관의 별세로 명맥은 태진아와 설운도가 잇게 됐다. 이들도 역시 활동은 하지만 지금의 젊은 트로트 가수들보다는 대중적 인기로는 많이 밀려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수협회장을 한 송대관의 사례처럼 트로트계의 거목으로 젊은 후배들의 존경과 의지를 받던 이들이었다. 4대천왕 중 두 명이 떠나면서 대중들은 1980년대부터 40년 이상을 대중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아티스트들의 공백을 깊게 느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