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학 입시만큼 휘발성이 강한 소재도 없다. 대통령 등 권력자 입장에선 대입 관리가 엄청난 ‘리스크’이고, 잘해야 본전이다. 특히 대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공정성과 엄밀성, 예측 가능성이 생명이다. 단 한 명이라도 불합리하게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입으면 안 되고, 출제·채점 과정에 털끝만 한 오류도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 정부는 수능을 ‘외주화’하고 있다. 대기업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것과 비슷하다. 대입 정책을 총괄하고 제도를 운용하는 부처는 교육부지만, 수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관장한다.
10일 오승걸 원장이 사임해 또 한 명의 평가원장이 ‘총알받이’ 신세가 됐다. 평가원은 “오 원장은 수능 영어 영역 출제가 절대평가 취지에 부합하지 못해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입시에 혼란을 일으킨 점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며 사임했다”고 밝혔다. 올 수능에선 영어 영역이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됐다. 영어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을 받은 수험생 비율이 3.11%로, 2018학년도에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수험생 부담을 줄이겠다며 절대평가를 도입한 취지가 훼손된 건 차치하고, 당장 수시모집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수험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국어 영역에선 철학교수도 풀기 어려운 ‘칸트 문항’이 나왔고, 서울대 교수가 정답이 2개라고 대놓고 이의를 제기한 문항도 있다.
과거에도 평가원장은 ‘파리 목숨’이었다. 박도순 초대 원장 이후 총 12명의 원장이 있었지만, 3년 임기를 모두 채운 인사는 4명뿐이다. 오 원장 전임자인 이규민 원장도 1년3개월 만에 물러났다. 당시 대통령 윤석열의 ‘킬러문항’ 제외 방침에 어긋나게 모의평가가 어렵게 출제됐다는 이유였다. 평가원장 교체가 ‘물수능·불수능’ 입시 혼란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은 안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평가원장에게 씌우고, 평가원의 기술적 실수인 양 치부하는 부조리극이 반복되고 있다. 1994학년도에 도입된 수능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수능을 유지할지 말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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