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주는 얼마나 넓은가

2025-04-02

우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우리가 빛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물리적 반지름은 약 490억광년에 이른다. 이론적으로 모든 인류가 동일한 크기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같은 범위의 우주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인식하고 누리는 세상의 크기는 현격히 다르다.

나와 같은 천문학자들은 어쩌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만큼 거대한 우주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우리은하의 반대편, 10만광년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수억광년 떨어진 두 은하가 충돌하며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은 훨씬 좁은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일상의 공간은 기껏해야 집 앞 편의점까지, 출퇴근하는 회사까지의 거리일 뿐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이들은 이웃 나라나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간헐적으로 관심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은 자신이 속한 도시나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이처럼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좁은 우주만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모든 사건이 자신에게만 벌어지는 특별한 일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착각, 그리고 그 이면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으리라는 망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더 넓은 우주를 바라보는 이들은 이러한 착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눈앞의 일이 우주 전체에서 볼 때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사건들의 원인을 이해하고자 우주의 보편적이고 일관된 법칙을 찾으려 노력한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세상의 현상을 통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과학적’ 사고라고 부른다.

하나의 거시적 관점으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일성 있게 바라보는 태도와 능력은 우리의 생존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일찍이 산불에 주목했다. 2000년 테라 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 지구적 산불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했다. 테라와 그 뒤를 이은 아쿠아 위성에 탑재된 ‘MODIS’라는 장치가 다양한 적외선 센서를 통해 지구 표면에서 급격한 열 방출이 발생하는 지역을 실시간 추적·감시한다. NASA에 산불은 지구 전체에서 발생하는 인류 공동의 재난이다.

NASA가 제공하는 MODIS 홈페이지에는 실시간 세계 산불지도 가 나온다. 현재 이 지도에서 한반도 쪽을 확대해보면, 최근 경북 지역의 참혹한 산불 흔적이 뚜렷이 보인다. 그러나 시야를 더 넓게, 지구 전체로 줌아웃하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붉은 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찍혀 있다. 산불은 우리에게만 찾아온 재난이 아니다. 지구 전체가 앓고 있는 병이며, 우리도 그 일부로 포함돼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은 ‘산불이 기후변화와 관련 있다’는 분석을 오해한다. 마치 과학자들이 산불의 발화 원인을 기후변화 그 자체로 돌린다는 식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주장은 엄연히 다르다. 발화 원인 자체는 당연히, 성묘객의 담뱃불, 전깃줄의 합선, 번개 등으로 다양하다. 문제는, 한 번 시작된 불씨가 기후변화로 인해 꺼지기 어렵고 더 널리 번지며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다는 점이다.

2019년부터 반년 가까이 지속된 호주의 대형 산불, 최근 미국 서부 산불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우리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공동의 재난에 함께 슬퍼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불과 몇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 기억을 너무도 쉽게 망각한 듯하다. 현재 한반도를 덮친 이 재난은, 마치 다른 모든 나라들은 아무 일 없는데 유독 우리만 피해를 입은 것처럼, 그리고 누군가의 의도로 발생한 일인 것처럼 인식되곤 한다. 어떤 이는 이를 간첩의 소행이라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권력자의 굿판이라는 음모를 주장한다. 이렇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을 쫓으며 자신의 상실감과 분노를 위로하려 한다.

대체 무엇이 그들의 관측 가능한 우주를 이토록 좁은 범위로 제한했을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버린 그들의 시야는 인식의 폭이 얼마나 제한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산불을 지구적 기후변화의 징후로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대응책을 모색하려는 과학적 성찰과 반성은 불씨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그사이, 위성 지도 위에는 또 다른 붉은 점이 조용히 번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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