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를 위한 변명

2025-04-02

지난달 22일부터 열흘에 걸쳐 경상북도 5개 시군을 덮친 이번 산불은 인명 피해부터 면적에 이르기까지 역대급 산불로 기록될 듯하다. 바짝 마른 날씨에다 계절 변화에 따른 바람을 만난 불씨는 경북 북동 지역을 공포에 밀어넣는 화마로 변했다. 무엇보다 이번 화재로 희생된 30여명의 고귀한 생명과 화재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헬기 조종사의 순직은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 힘든 일이다. 천년 고찰 고운사가 불탔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위태로웠다.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종종 소나무가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번 산불에서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 불붙은 솔방울은 불을 전파하는 폭탄에 비유됐고, 송진은 산불을 키우고 화재 진압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나무가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산은 그래서 대형 산불 위험이 내재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활엽수의 비율을 높이고 소나무 일변도의 산림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더해지는 이유이다.

재난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분석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오랫동안 한국의 산을 지켜왔던 소나무 입장에서는 참으로 섭섭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산이 소나무 일변도의 수종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오랜 산림 정책이 만들어 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 산림 정책은 말 그대로 소나무 정책이었고, 이는 국가를 넘어 지역 공동체와 개인의 관점에서도 그랬다.

조선은 건국과 더불어 공조 산하에 산택사(山澤司)라는 기관을 두어 소나무 중심의 산림 정책을 폈다. 그리고 소나무를 보호하는 일은 병조에 맡겨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루었는데, 이는 소나무의 쓰임새 때문이었다. 요즘도 건축 자재로 목재가 많이 활용되지만, 조선시대 건축은 소나무 없이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궁궐이나 사찰, 서원, 종택과 같이 규모가 큰 건물의 건축에서 소나무 수요는 절대적이었다. 도로와 교량 건설과 같은 토목 현장에서도 소나무가 사용됐다. 조운선이나 전투용 선박 자재 역시 소나무였다. 물류와 국토방위의 핵심 자재였다는 말이다.

소나무는 백성들의 기근을 해결할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다. 흉년으로 인해 감당하지 못할 기근이 닥치면, 소나무 껍질은 백성들을 살릴 마지막 식량이었다. 소나무의 부드러운 속껍질을 쪄서 말린 후 가루로 빻으면 그럴듯한 식량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국가나 지역 공동체, 또는 문중 차원에서 소나무 보호를 위한 금양(禁養) 정책을 실시했는데, 강원도와 경상도 북부 지역의 경우만 해도 60곳이 넘게 봉산(封山)으로 지정됐다.

화목으로 겨울 난방 수요를 감당했던 조선시대 내내, 대부분 산은 말 그대로 민둥산이었다. 소나무를 정책적으로 보호했던 곳만 ‘한국의 숲’이 됐고, 이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산에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대형 산불 역시 봉산이 많았던 고성에서 영덕에 이르는 동해안권에서만 60% 이상 발생했고(김동현 외, <역사문헌 고찰을 통한 조선시대 산불 특성 분석>), 현재도 우리의 봄을 괴롭히는 위험 요인이 됐다.

조선시대 내내 소나무가 가진 산불 위험성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군사를 두어 금양 지역의 일반인 출입과 벌목을 엄격히 금지하고, 관리 부실 화재에는 책임을 강하게 묻는 방식으로 산불을 예방·관리했다. 금양 지역 산불 발생 시 산을 관리했던 책임자를 곤장 100대와 2000리 밖 유배형으로 처벌한 이유였다. 소나무 조림의 역사는 예방과 관리의 역사였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산불 역시 소나무 일변도의 산림 구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기에 앞서 예방과 관리 부실을 먼저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산불로 500년 이상 가꾸어 왔던 소나무 조림의 역사마저 불타고 있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