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산불…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25-04-03

역대 최악의 산불이 한반도 동남부를 휩쓸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도깨비불 같은 불덩어리가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마을이고 산이고 바닷가 어선까지 화마가 집어삼킨 것이다. 지난달 21일 시작된 산불은 울산, 경북, 경남, 충북, 전북 등 11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중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과 경남 산청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피해 면적이 서울의 약 80%에 해당하는 4만8000ha에 달하고 인명 피해도 사망 30명, 부상 45명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집 3800여 채가 잿더미가 됐고, 대피소로 옮긴 이재민이 4700여 명이다. 간접피해 인원까지 합하면 4만명에 육박한다. 경제적 손실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천년고찰인 경북 의성의 고운사, 운람사 등도 전소됐다.

이같이 엄청난 재난은 기후위기와 인간의 부주의가 빚어낸 결과였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빠르게 뜨거워지면서 산불과 폭염, 홍수 등이 잦아졌다. 이번 산불은 성묘객이 라이터로 봉분에 있는 나무를 태우려다 바람에 불씨가 날려 초대형 산불로 번졌다. 쓰레기 소각과 제초작업 중 발생하기도 했다. 산불이 덮친 곳에 숲이 다시 돌아 오는데 30년, 땅까지 완전 복원되는데 10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번 산불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사망자 30명 중 26명이 노인이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6세였다. 영덕읍에 살던 89세와 83세 노부부는 대피 도중 참변을 당했다. 잿더미가 된 대문 앞에서 꼭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대피 중 할머니가 넘어지자 할아버지가 일으켜 세우다 연기에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 71세 여성은 소아마비 환자로 고립돼 질식해 숨졌고 88세와 86세 남성과 86세 여성은 실버타운 외상환자들로 차량으로 대피하던 중 산불이 확산되면서 차량이 폭발해 숨졌다. 또 대피소에 임시거처하는 주민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번 산불 피해지역은 전국적으로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첫 발화지역인 의성군은 고령화율이 47.9%로 전국 226개 시·군·구 중 1위다. 청송군은 7위, 100세 노인이 매몰돼 숨진 영덕군은 9위, 영양군은 11위, 경남 산청군은 고령화율 43%로 전국 12위이다. 또 이들 지역은 1인 가구나 노부부 가구가 많다. 거동이 불편해 제때 대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수행능력(ADL)이 낮은데다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등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고령사회와 인구소멸이 빚은 비극인 셈이다.

현행 화재예방법(제23조)과 재난안전법(제31조의2)은 노인을 화재안전취약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임의규정으로 형식적이다. 미국은 대형산불이 발생하면 강제 대피명령을 내린다.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LA)에서 대형산불이 났을 때 경찰이 집집마다 방문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공무원들이 직접 도로를 폐쇄하고 긴급대피소로 주민들을 안내했다. 우리는 재난약자가 가장 먼저 희생당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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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노인

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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