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작 칼럼] 농업 혁신이 시작되는 해가 되기를

2025-01-12

냉전체제 붕괴 이후 전성기를 구가했던 자유무역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난 30년간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에서는 자국 우선의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한국은 대응은커녕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손발이 묶였다. 그간 쌓아 올린 국가 브랜드는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았다.

2024년 첫날 1332원으로 시작한 원·달러 환율은 이제 1500원 선마저 위협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에너지와 수입 농산물 가격에 그대로 반영돼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농자재와 농사용 에너지 비용 역시 급등을 피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 농업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돌아본다. 얼마나 많은 기술적 진보를 이뤘는지, 농업구조는 얼마나 개선했는지, 식량안보는 얼마만큼 향상됐는지, 농가소득은 높아졌는지, 다음 세대 농업을 이을 우수한 청년은 얼마나 유치했는지 등. 냉정하게 돌아보면 단 하나도 더 나아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매년 18조원이 넘는 농업 예산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업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쇠퇴하고 있다. 모든 지표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2023년 농림업 총생산액은 약 61조 6000억원으로 몇년째 정체 중이다.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쌀은 8조원으로 농업 총생산액의 13%에 불과하지만, 거의 모든 농업 개혁 이슈를 집어삼켰다. 2025년 정부가 양곡 매입과 관리에 배정한 예산은 2조7925억원에 달한다. 농업 총부가가치 생산액은 약 34조원인데, 이를 위해 투입되는 예산과 간접 지원액은 총부가가치 생산액의 70%를 넘어선다. 농업인구의 고령화는 심화되고, 소농 중심의 농업구조는 요지부동이다. 기후변화는 단기적인 물가 폭등을 유발하고, 기후플레이션은 장기적인 소비자 물가 상승을 압박한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세계화와 자유무역이라는 순풍을 타고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농업 또한 큰 위기 없이 그 흐름에 편승해왔다. 그나마 좋았던 시절 농업계는 농업구조 전환을 위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농정혁신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건 더 많은 정부 지원을 의미했다. 그 결과 여전히 노동집약적 농법에 의존하면서 생산성 증대와 비용 절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바람 방향이 바뀌고 있다. 한국 경제는 새로운 통상 질서 속에서 선진국 지위를 지킬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고, 농업은 민간 중심으로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섰다. 이제부터 그간 미뤄뒀던 농업구조 전환 지체의 영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환율 상승과 국가 브랜드 가치 하락은 농업계가 느끼는 타격감을 더욱 증폭할 것이다.

솔직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이제라도 지난 30년간 미뤘던 농정 혁신을 시작할 때다. 어차피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 농정 혁신이라는 길고 힘든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다른 나라 농업과 비교가 가능하도록 농업 통계와 각종 지표부터 현대 농업에 맞게 재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농업계 내부에서 미래로 나아갈 큰 방향부터 합의를 이뤄야 한다. 올해는 다음 한 세대 동안 이어질 농업 혁신의 원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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