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묻지 마라?

2025-05-20

미국을 여행하게 되면 현지인들이 말을 걸어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첫 번째가 ‘Where are you from?’이다. 어디서(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것이다. 미국인들끼리도 대개 첫 질문은 비슷하다. 어디 출신이냐 쯤으로 이해된다. 그럴 경우 자동차 번호판을 슬쩍 가르킨다. 미국 자동차 번호판에는 주 이름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뭔가 근사한 한 구절씩 붙여 놓았다.

골드러시로 개발된 캘리포니아 차에는 ‘골든 스테이트,’ 뉴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아름다운 콜로라도는 ‘컬러풀 콜로라도’라고 적혀있다. 또 독립운동의 진원지였던 뉴햄프셔는 ‘Live free or die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라는 무시무시한 글귀가 적혀있다. 각 주마다 가진 이미지를 극명하게 표시한 낱말들이다. 낭만적인 표현도 있다. 조지아 번호판에는 ‘내 마음의 조지아(Georgia on my mind)’라고 적혀있다. 조사에 따르면 ‘내 마음의 조지아’를 보는 순간 열에 아홉은 조지아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어쨌든 조지아는 슬로건 하나로 가장 기억에 남는 주가 된 셈이다.

서울의 구청, 지방의 지자체도 저마다 멋진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고향 또는 사는 곳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고 또 사랑하는 게 사람의 이치다. 일찌감치 말 타는 문화가 발달했던 미국인들도 이럴진대 수천 년 동안 농경사회로 살아온 한국·일본·중국의 경우 고향에 대한 ‘집착’은 훨씬 더하다. 그래서 죽음을 상징하는 까마귀조차도 고향까마귀라면 반갑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고향을 묻는 것은 금기가 되어 있다. 이력서에도 본적 난을 삭제했다. 얼마 전 한 대형 시중은행은 인사카드에서 출신지·병역 등을 삭제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이번 조치를 통해 능력 우선주의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신지가 능력·성과와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굳이 삭제해야 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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