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공단, 유족급여 지급 거부에
유족 “불승인 처분 부당” 취소 訴
재판부 “과로 영향”… 원고 승소 판결
배달 기사가 음식 배달 시간을 지키기 위해 급히 운전하다 신호를 위반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비록 신호를 위반하긴 했지만, 누적된 과로로 인해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는 배달 중 사고로 사망한 A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 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한 배달 대행 플랫폼에서 배달 기사로 일하던 A씨(사망 당시 25세)는 2023년 9월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신호를 위반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씨 부모는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신호 위반이라는 고인의 일방적 중과실’로 사고가 났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A씨 부모는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신호위반이 원인이 돼 발생한 사고인 점은 인정되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업무 특성상 배달 지연 등으로 인한 고객 불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음식을 배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며 “A씨는 사고 당일 32회의 배달 업무를 수행했고, 시간당 평균 적어도 4회 이상의 배달 업무를 수행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사고 당시 A씨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을 것으로 추단할 수 있고, 순간적 집중력 또는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자신의 속도나 교통신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순간적 판단을 잘못해 신호를 위반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A씨가 배달하던 음식점 사장의 ‘픽업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히 이동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내용의 확인서와 ‘배달업무가 급박하게 이뤄진다’는 내용의 동료 배달 기사들 진정서도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됐다.
김현우 기자 wit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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