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펀드 4세대, 국가 전략의 새로운 전장

2025-11-24

정책펀드는 국가가 전략적인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예산으로 조성해 운용하는 자금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 출범한 성장사다리펀드가 대표적이며, 중소·벤처기업을 꾸준히 지원하며 15조 원 이상을 투자해 왔다.

해외 사례로는 1993년 이스라엘 정부가 만든 요즈마 펀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정부가 40%, 해외 벤처캐피털 및 글로벌 기업들이 60% 출자한 1억 달러로 벤처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이스라엘 기술창업 생태계를 일으킨 결정적 기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책펀드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IT혁명이 본격화된 1980년대 초였다. 미국·유럽연합(EU)·싱가포르 등에서 시작된 1세대 정책펀드들은 창업·벤처 생태계 조성을 위한 마중물 역할이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고속성장 단계인 이른바 ‘스케일업’ 단계에 진입하자, 2000년대 중반부터 이들을 지원하는 대형 2세대 펀드가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EU에서 R&D 지원과 스타트업 지원을 실행한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이다.

2010년대 중반,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며 정책펀드는 또 한 번 진화했다.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3세대 정책펀드가 등장한 것이다. 2014년 중국 정부가 설립한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빅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설립된 이 펀드는 1기(1387억 위안, 약 26조 원)와 2기(약 2000억 위안, 약 38조 원)로 나뉘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3세대 정책펀드들은 여전히 그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반도체와 같은 특정 산업에 집중했고 유니콘 기업 육성 등 단기성과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미·중 갈등의 심화 속에 AI 혁명이 본격화되자, 각국 정부는 더 크고 복합적인 4세대 정책펀드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칩스&사이언스법 펀드는 반도체 제조·장비·R&D·컴퓨팅 등 전 분야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독일의 딥테크&퓨처 펀드는 AI·양자·우주·사이버보안·반도체 등 딥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 중이다. 정책펀드의 역할이 기술 혁신을 넘어 경제안보와 기술주권의 핵심 수단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처럼 정책펀드는 단순한 산업 지원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자본 배분 메커니즘으로 진화했다. 그렇기에 각국 정부 당국은 정책펀드의 조성과 운용 과정에서 정치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거버넌스 체계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패할 경우 그 사회적·경제적 대가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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