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래도 우리는 가족

2025-12-14

열린광장

아이를 셋 낳고 키우는 일은 한 편의 서사다. 첫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의 벅참부터, 매일 이어지는 육아와 일상의 반복, 그리고 이제는 고집도 성격도 제각각인 세 딸과의 눈치 싸움까지. 어머니라는 자리는 처음엔 막연한 사명감이었고, 지금은 어쩌면 끊임없이 자식과 타협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물러서는 인내와 끈기의 직업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그래도 내가 중심이 돼 끌고 갈 수 있었지만 자라면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는 몰라’, ‘그냥 냅둬’라는 말이 내 귓가에 자주 맴돌기 시작했다. 그 말 속에는 사춘기의 흔들림도 있었고, 나름의 독립적인 자아도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들이었다. 내가 애써 마련한 식탁에서 투덜거리며 젓가락을 놓는 아이를 볼 때, ‘이럴 거면 뭘 위해 고생했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들보다 아이가 조용히 내 방에 들어와 말없이 등을 기대는 짧은 찰나가 더 오래 남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풀어놓거나, 밤늦게 “엄마 나 이거 하나만 도와줘” 하며 문을 두드릴 때면 마음이 또 누그러진다. 아마도 이것이 가족이라는 관계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미운 마음과 고운 마음이 번갈아 찾아오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억지로라도 웃고, 어떻게든 다시 연결되는 관계.

어머니로 산다는 건 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아이들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무너질까 걱정되고, 너무 참견하지 않으려 해도 손을 놓을 수 없는 마음. 어느 쪽으로도 확 기울지 않고,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는 그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웃고, 삐치면서도 밥은 같이 먹고, 가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다시 안부를 묻는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는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화내지 않고, 늘 다정하고, 뭐든 들어주는 그런 엄마.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대신 나는 노력하는 엄마이고 싶다. 아이에게 상처를 줬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고, 내 말이 틀렸다면 인정할 줄 아는 엄마. 그리고 아이들 각자의 삶을 지켜보며 응원할 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우리 가족이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길 바란다. 각자의 성격과 감정이 다르듯, 가족 안에서도 수많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갈등을 덮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자세로 마주하고 풀어가려는 노력이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태도, 잠시 다투더라도 다시 밥상 앞에 앉는 용기,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을 단단히 만들어간다.

나는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나를 실망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의 인내심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때론 버겁지만, 이 역할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토록 깊은 감정도, 치열한 다짐도, 따뜻한 깨달음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서로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내가 노력할수록,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진다. 오늘도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미워도 사랑하고, 힘들어도 웃으며, 그렇게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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