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만남이 만든 큰 변화
어느 날 신 대표는 우연히 도서관 계단을 내려오다가 액자에 쓰여진 글을 보았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라는 글이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 셋을 가진 경력 단절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산후 우울증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찾은 게 이서 문화의 집이었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뚫릴 것 같았다. 하지만 수강하고 싶었던 수채화반은 이미 마감이었다. 대신 캘리그라피반에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캘리그라피와 만났다. <나날글씨공작소>의 신선하 대표는 이 우연의 만남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만약 그때 그림을 시작했더라면 과연 오늘날 <나날글씨공작소>는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을까?
글씨를 배우러 다녔지만 기대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마음먹은 것처럼 글씨가 써지지 않자 자연스럽게 흥미도 떨어졌다. 결국 6개월 만에 접었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우연히 다른 문화센터에 등록하면서 주변의 칭찬 릴레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칭찬 한마디에 신 대표는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 찾은 위로와 희망
그러다가 코로나가 닥쳤다. 혼자 독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그녀는 온라인반 수강을 선택했다. 새벽 6시 수업. 세 아이를 둔 전업주부로서는 가사만으로도 버거웠다. 게다가 부담 가는 비싼 수강료도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남편은 곁에서 응원해 줬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재워놓고 새벽까지 연습하면서 신 대표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잘하고 싶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있었던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득 학창 시절 가슴 뛰는 일을 하라고 했던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게 새벽 6시에 열리는 수업을 1년 동안 빠짐없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 대표는 그동안의 취미 생활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2021년, 그녀는 <나날글씨공작소>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공방을 시작했다. ‘나날’은 나날이 나아지는 삶을 닮고자 했던 그녀의 한글 필명이기도 했다.
막상 사업자 등록증은 냈지만 경력도 없는 초보 사장에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완주는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녀가 나중에 공방을 내게 되면 꼭 완주에 내겠다고 다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날, 완주문화재단에서 재능기부 형태로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번 해볼까 하는 욕심이 났다. 아는 이들 5명을 기반으로 첫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 강의치고는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내친김에 기회가 될 때마다 몇 차례 더 강의를 진행하였다.
강의를 해본 사람은 알지만 내가 아는 것과 남에게 알려주는 것에는 차이가 크다. 많은 사람들이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 대표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캘리그라피에 대한 간절함이 그녀를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직장 상사 아이의 축하 선물로 글귀 하나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캘리그라피로 받은 첫 의뢰였다. 그날 밤 수백 장의 글씨를 쓰다 보니 어느덧 동이 터오고 있었다. 다 쓰고 나니 긴장과 부담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같은 글씨를 수백 장 쓰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그래도 다행히 만족할 만한 작품 하나를 건졌던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작품은 마치 자식 같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첫 의뢰가 있은 이후 신 대표가 한결 자신감이 붙었음은 물론이다.
작은 인연이 만든 따뜻한 마음
올 6월, 신 대표는 <나날글씨공작소> 회원들과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마음을 잇는 글씨’라는 전시회를 가졌다. 줌으로 교육할 때부터 같이 했던 사람들이라 끈끈함이 남달랐다. 각자 사연도 많고 하고픈 말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작품 전시회를 연 것이다. 이 전시회는 그동안 신 대표를 지지해 주었던 전국 수강생들과의 글씨 인연의 소중함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신 대표는 여기에 <눈이 부시게> 연작을 출품했다. <마음의 빛>이라는 부제가 달린 작품에는 글씨 공부에 치열했던 지난날을 담고자 했다. 어느 날 먹을 듬뿍 찍어 선을 그었다. 그을수록 선은 끊기고 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글씨 내에서 자연스럽게 결이 만들어지고 그게 윤슬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글씨를 쓰면서 서툴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과 작품이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선이 반듯하기만 하면 무슨 매력이 있겠나 싶었다. 조금 서툴고 실수도 하지만 나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 윤슬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연작 중 전시회 때 팔린 <삶의 조각>이라는 작품도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한복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로 조각보를 만들 듯이, 잊고 살았던 순간이나 지워버리고 싶던 순간도 돌이켜 보면 삶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신 대표는 이 작품을 하면서 그 소중한 부분이 모여서 지금은 자신을 만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네 편의 작품 주제로 <눈이 부시게>를 택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비루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허투루 대접받아야 할 할 인생은 없다. 하찮게 보인다 할지라도 누군가의 삶 역시 값지고 귀하다. 그녀는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와 남은 시간을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신 대표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이자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선긋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신 대표는 캘리그라피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다. 바로 가장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선긋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선긋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캘리그라피를 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선긋기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힘이 잔뜩 듬뿍 들어가서 제대로 된 선긋기가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선긋기가 편안해진다. 선긋기가 제대로 되어야 다음이 수월하다. 하지만 두려워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남들 다 하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해봐야 기회가 문을 열어준다.
신 대표가 글씨를 공부하면서 애써 고수했던 게 있다. 바로 고민을 하기 시작한 일이다. 글씨 하나를 배우더라도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결국 새로운 방식의 글을 접할 때마다 붓의 각도와 글씨의 굵기, 묵의 양은 어떻게 조절했을까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요즘도 그녀가 수강생들에게 글씨를 분석하고 연구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캘리그라피는 느린 언어이다. 아름다운 글씨만 추구하는 언어가 아니라 내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을 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쁘게 쓰려고만 애를 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부분 쉽게 포기한다. 그보다는 자신만의 느낌을 담는 게 더 소중하다. 내 삶을 온전히 편안하게 담을 수 있는 글씨 쓰기가 캘리그라피에서 더 중요한 이유이다.
결국 다른 사람의 글씨를 흉내낸 게 아니라 본인의 글씨를 써야 한다는 게 신 대표의 지론이다. 따라 쓰는 건 기술을 배우는 거고 그 기술의 밑천은 쉽게 바닥을 드러낸다. 그보다는 자신만의 글씨를 우직하게 써 내려가다 보면 자기만의 감성과 느낌을 담은 온전한 자기 글씨를 만들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게 캘리그라피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녀가 강조하는 캘리그라피의 장점은 질릴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이 나서 글씨를 쓰다 보니 점점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자신의 작품활동 외에도 사진과 합성을 한다거나 굿즈 제작에 응용할 수도 있고, 다른 장르와 협업을 할 수도 있다.
최근 신 대표는 대학원에서 서예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각 새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전각, 우리에게는 수제 도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도장 파는 작업이다. 전각은 사각도장의 한정된 공간 안에 디자인과 조형, 그리고 예술적인 감각을 응축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만큼 매력이 있다. 그래서 전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방촌(方寸)에 우주를 새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캘리그라피로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다
우리의 삶은 행복했던 순간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울고 욕도 하고 행복해 하며 스트레스도 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버티고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간다. 신 대표는 자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글씨로 좀 유명해지면서 뜻밖의 일도 경험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그냥 대충 하나 써줘! 금방 쓰잖아.” 와 같은 무례한 요구를 하는 이들이 생겼다. 그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다. 제대로 된 글씨 한 장을 얻기 위해 수백 장을 버려야만 했던 숨은 노력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조차 수강생이 되어 보고 나면 “한 획 긋기가 이렇게 힘든 거였네요.”라고 고백했다. 물론 모든 이가 다 캘리그라피를 배울 필요는 없다. 다만 신 대표는 한 글자 한 글자,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 그 마음, 그 정성을 함부로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신 대표가 그 옛날 도서관 계단에서 보았던 몇 글자가 위로가 되고 마음의 평화를 주었듯이, 그녀가 쓴 글도 누군가에게 반가운 선물처럼 다가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녀가 캘리그라피라는 동아줄을 움켜쥐고 자신의 우물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그녀는 오늘도 어둠의 긴 긴 터널에서 혼자 버거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캘리그라피가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다.

지금도 기억나는 수강생이 있다. 직장에 다니던 50대 중년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팔이 아파서 수술하는 그 순간에도 빨리 나아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신 대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을 보면서 그게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힐링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영상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신 대표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캘리그라피를 만나서 작가와 강사로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강생들에게 더 진심으로 다가서고 싶다. 앞으로의 소망은 교육청과 연계하여 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예를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붓에서 면봉이나 나무 젓가락으로 도구만 바꿔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흥미를 가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유튜브로 가득찬 스마트폰이 아닌 감성적인 글씨와 만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 싶다.
오늘도 신 대표는 다시 화선지 앞에 선다. 내가 쓰는 글씨가 누군가에게 힐링이 되고 위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글씨를 쓰다 보면 언젠가 이 글을 읽을 누군가가 꼭 그런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당신의 글 때문에 나는 위로받았습니다.
그 글로 나는 세상으로 가는 힘을 얻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신 대표가 화선지 앞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그녀는 자신이 쓴 글과 그림을 넣은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아마 그 책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 오늘 다 하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 앞으로 그녀가 만날 세상과 그녀의 글씨로 위로받았던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도 함께 실릴 것이다. 그 책이 나오면 나도 반가운 마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야겠다.

글=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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