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제4부〉스파이 잡기 30년, 하동환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의 비망록
3화. 김정은 집권 이후 득실대는 IT 무장 스파이

2011년 3월 18일 중국 상하이(上海). 저녁 퇴근시간이 시작될 무렵 2호선 루자주이(陆家嘴)역 인근은 출퇴근 인파로 붐볐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동방명주타워 근처다. 겉으로는 평범한 금요일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날 그곳은 남한과 북한이 총성 없이 싸우는 전쟁터였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이미 해가 뜨기 전부터 움직였다. 북한 대남공작부서 요원들이 그곳에 나타날 것이란 정보가 사전에 입수됐기 때문이다. 상대도 노련한 공작원들이었다. 추적을 따돌리는 데 익숙한 그들을 감시하려면 요원들 역시 숨을 죽이고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다.
몇몇 요원들은 지하철역 출구 근처에서 선글라스와 모자로 위장한 관광객으로, 어떤 이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직장인으로 위장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돈을 구걸하는 거지조차도 북한 공작원의 현지 협조자가 아닌지 눈여겨봐야 했다. 망원렌즈로 촬영이 가능한 거리의 자동차 안에서 하루 종일 버텨야 하는 수사관들도 있었다.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상황. 페트병을 준비하는 건 기본이었다.

북한 요원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들은 접선 예정 시각보다 세 시간 먼저 현장에 도착해 동선을 확인하고 의심스러운 낌새가 없는지 살폈다. 그들도 현지 중국인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몇 초 방심으로 정체가 드러난다면 1년 이상 추적한 국내 자생 스파이와 북한 공작원의 접선 장면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침내 접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북한 요원들에게 포섭돼 한국에서 주요 정치인 동향을 매주 보고했던 스파이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간부로 활동하는 일본 교포 스파이 박모(당시 45세)씨와 함께 이곳에 나타났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공작부서 225국 고위층과 만나 현지 북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하동환(58)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이 2013년 수사과장을 맡으며 지휘했던 문화예술단체 대표 전모(당시 43세)씨 수사를 회상한 내용이다. 그는 “현재도 국정원 직원들이 이와 비슷하게 뛰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적국인 북한에 국정원의 내·수사 기법이 노출될 수 있는 우려 때문에 밝힐 수 없지만 직원들이 장기간 잠복으로 인해 요로결석과 같은 병을 가진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현장의 치밀한 증거 수집은 묵비권을 사용하는 스파이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 국정원은 현지에 심어 둔 에이전트(협조자)를 통해 전씨가 상하이 호텔에서 북한 225국 고위 간부와 단둘이 찍은 사진을 확보한 뒤 조사실에서 내밀었다. 당시 호텔 방에는 북한 측 고위 간부 리모씨와 전씨, 사진을 찍은 사람 세 명밖에 없었다. 전씨를 뺀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이 국정원에 제보했거나,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에 관여한 사람을 미리 포섭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증거였다.
전씨는 하동환에게 읍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