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의 본질은 양면성이다.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약 66조 달러)은 세계증시 전체(124조 달러)의 절반을 넘는다. 한국증시는 아직 2조 달러에도 못 미친다. 명목 GDP 기준으로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26%를 차지하고 있으니 증시가 실물 경제의 위상보다 2배나 큰 셈이다. 항공모함 같은 미국증시의 움직임은 단순한 투자 차원을 넘어 세계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는 미국증시의 축제를 함께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경계감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자세가 필요하다.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은 은퇴 전인 2024년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 서한에서 “요즘 주식시장은 카지노와 유사하다”고 직격 비판했다. 진정한 투자보다 투기적 행동과 충동적 트레이딩이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그가 즐겨 본다는 미국증시의 ‘버핏 지수’(시가총액/GDP 비율)는 현재 214%로, 2000년 닷컴 버블 때의 159%를 훌쩍 넘어 장기 추세선을 상회하고 있다. 한편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 23배 역시 지난 10년 평균 18.1배, 20년 평균 15.8배에 비해 부담스러운 수준이고, 10년 평균 주당순이익을 적용한 실러 PER 또한 과거 버블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장에는 이러한 과열 지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시가총액 상위의 빅테크 기업들(M7)이 증시 전체에서 32%나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 비중이 23%에 달하고 있어 충분히 정당성이 있다. 이들 성장주의 선행 PER(29.4배)도 최근 10년 평균 25배보다는 높지만, 인공지능(AI) 관련 성장성이 뒷받침된다면 지난 2021년 고점(38배)까지도 내다볼 수 있다. 또한 실질금리를 적용한 미국증시 전체의 투자 매력도는 역사적 중립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만큼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금리가 낮다는 얘기인데 이제부터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좀 더 내려주면 시장은 한결 숨 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금리가 폭등하거나 기업이익이 급락한다면 시장은 바로 무너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아직 그런 조짐은 딱히 없다.
결론적으로 미국증시는 지금 비싸지만 거품은 아니며, 거품은 아니지만 분명 비싸다. 이런 경우 시장의 관성으로 주가가 좀 더 과열 수준에 이르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증시가 고용과 소비 등 실물지표와 좀 더 멀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마치 고무줄이 끊어지듯 주가가 갑자기 탄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천천히 오래 가느냐, 빠르게 치솟다 급락하느냐는 시장의 몫이다. 그런데 AI 중심의 기술주들은 경기순환에 비교적 자유롭고 금리 인하에도 유리하므로 이들의 랠리 속도가 시장 전체를 좌우할 것임은 자명하다.
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