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의 비극 소비하며 수동적 일 여성상 강화

2025-10-02

오페라 ‘나비부인’과 서양 패권주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10대 오페라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에 의해 1904년에 초연된 이 오페라는 일본 규슈 남부의 항구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다. 극은 미국 해군 장교의 현지처가 된 소녀 게이샤 ‘초초상’(초초는 일본어로 나비라는 뜻이다)의 가련한 운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비부인’은 한 세기 이상 미국·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무대에 오르면서 일본 또는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달리 말하면 서양인들의 일본 인식은 대부분 ‘나비부인’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나비부인’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게이샤·후지산·벚꽃·할복(Harakiri)과 같은 이미지들은 서양인들이 일본과 관련해 가장 친숙하게 떠올리는 문화상징들이다. 이 오페라는 틀에 박힌 일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재생산해온 문화적 고전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사랑 잃고 끝내 자결하는 이야기

작곡가 푸치니, 자포니슴에 매혹돼

백인 남성·동양 여성 극중 불평등

현실의 서구·일본 국력 차이 반영

서양 따라 부국강병 추구한 일본

미국엔 손안에 든 섬나라였을 뿐

판화에서 시작된 일본에 대한 환상

푸치니는 왜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일본을 오페라의 배경으로 삼았을까? 그 전후 사정을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19세기 중엽부터 에도시대 일본의 서민 판화 우키요에(浮世繪)가 나가사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유럽에 유입되면서 파리·런던·빈 등의 대도시 상류층을 중심으로 일본 미술품을 수집하고 집에 장식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이 유행은 프랑스어로 ‘일본 취미’라는 뜻의 ‘자포니슴(Japonisme)’이라 불렸다. 사람들은 일본 목판화 속에 그려진 자연과 문화, 풍속을 통해 유럽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신기한 섬나라 일본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여기에 프랑스 해군장교이자 인기 작가였던 피에르 로티가 자신의 일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국화 부인』(1887년)을 출판하자 큰 화제가 되었다.

로티의 소설은 일본인들의 실제 생활을 알고 싶어하는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걸쳐 유사한 소재를 다룬 파생 작품을 촉발했다. 예를 들면 미국 작가 존 루터 롱은 선교사 남편을 따라 나가사키에 체재한 적이 있는 여동생의 회상을 토대로 미국 해군 중위 핑커턴과 게이샤 초초상이 등장하는 단편소설 ‘나비 부인’(1898년)을 창작했고, 1900년 런던 체재 중에 이 소설을 각색한 연극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푸치니는 이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어떤 이야기인가? 나가사키에 일정 기간 주둔하게 된 미 해군 중위 핑커턴이 일본인 브로커의 소개로 15세의 게이샤 초년생 초초상과 ‘계약 결혼’을 한다. 초초상은 그것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고,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삶의 방식까지 바꿨다. 미국으로 떠난 핑커턴이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데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어린 아들을 키우며 기다린다. 그러다가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핑커턴이 미국인 아내와 함께 나타나자 초초상은 충격 속에 칼로 자결한다.

할복이라는 선정적 요소 가미

오페라 ‘나비 부인’은 유명한 ‘어떤 개인 날’을 비롯해서 주옥같은 아리아가 잘 알려져있지만, 내용은 그 선율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오히려 불편하다. 극 중에 투영된 서양 패권주의와 남성중심의 세계관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예를 들면 현지처가 된 초초상은 순종적이고, 수동적이며, 충성스럽고, 희생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이후 서양의 예술가들이 반복해서 표현해온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정확히 부합한다. 아울러 서양의 예술표현 속에 등장하는 일본 여성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의 이국취미와 성적 취향을 충족시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게이샤가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본 여성들에게 ‘국화’ ‘벚꽃’ ‘창포’ ‘나비’ 같은 자연물의 이름이 부여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들은 단지 백인 남성의 ‘완상용’이었다. 특히 푸치니를 열광케 한 초초상의 할복 장면은 로티의 원작에는 없었지만, 추후 극작가 벨라스코가 새로 추가했다. 일본에 대한 서양의 미적, 문화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사무라이 정신과 할복’이라는 선정적 요소도 가미해야 했으리라. 그런데 이를 통해 일본적 색채를 강조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과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도 수반했다. 예나 지금이나 계약 결혼한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배신당했다고 해서 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서양 여성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가 제작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본을 ‘독특하고 특수한 나라’로 분류하는 일반적 관념의 강화에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극 중에 묘사되는 백인 남성/동양 여성의 불평등한 구도는 현실에서의 인종 간, 국가 간 비대칭적 권력관계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핑커턴과 초초상의 결혼 계약 기간은 999년으로 되어있지만 핑커턴은 언제든 마음대로 계약을 파기할 수 있었다. 이 황당한 계약 내용은 페리 제독의 흑선을 목도한 일본 막부가 5개국 열강을 상대로 영사재판권을 규정하고 관세자주권이 결여된 불평등조약을 체결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관세자주권을 회복한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인 1911년이었다.

일본인들이 역사 속에서 레짐 체인지(체제 변동) 이상의 극적인 변혁을 경험한 것은 단 두 차례였다. 1868년 메이지유신과 1945년 이후 전후 개혁이 그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봉건체제에서 근대국가로 들어섰고, 패전 후 헌법개정 등의 개혁을 통해 권위적 천황제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두 번 모두 일본의 영토가 외부세력의 무력에 노출되고 나서였다. 비록 위협만으로 그쳤지만 검은색 군함을 이끌고 나타난 페리 제독이 첫 번째였고,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도쿄 근교의 아츠기(厚木)비행장에 착륙한 맥아더 장군이 두 번째였다. 일본의 근대와 현대는 두 명의 미합중국 장성의 입회하에 막이 열린 셈이다.

1945년 9월 도쿄의 미국대사관에서 촬영한 히로히토 천황과 맥아더 원수의 기념사진은 일본의 국가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지정학적 절대 강자로서의 미국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군복차림으로 가부장 같은 관록과 여유를 연출하는 맥아더 장군과 모닝 정장 차림으로 직립부동의 자세를 취한 히로히토 천황의 모습을 본 미국의 어느 정치학자는 이를 두고 역사적인 ‘결혼사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결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현대 일본’이 태어났다고 단순화하고자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초초상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미국에 문호를 개방한 후부터 태평양전쟁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근대사를 축약한 형태로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초초상은 서양인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과 신념을 버렸다. 결혼식 전날 교회에 가서 기독교로 개종을 했고, 기모노 대신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의 관습을 배웠다. 그런 그녀에게 분노한 친척들이 절연을 선언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안에 예수상과 성조기를 들였고 하녀에게는 자신을 ‘핑커턴 부인’으로 부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백인 남성에게는 찰나의 쾌락 상대였던 이 동양 여성이 마주해야 했던 현실은 이용된 후 버려지는 운명이었다.

트럼프 관세 압박 ‘나비부인’ 떠올려

근대일본은 탈아입구를 외치고 부국강병을 내세우며 서양의 제국주의 노선을 추종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질적이지만 언제나 굴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동양의 섬나라를 미국 중심의 태평양 역내 질서 구축을 위해 이용가치 있는 에이전트로 활용해온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나비부인’은 동양 여성을 순종적이고 쉽게 정복당하는 존재로 묘사해온 서양의 예술표현 텍스트의 또 다른 변주이다. 이러한 텍스트들을 통해 동양을 서양의 식민지적 객체로 보는 관념은 보존되고 강화되어왔다. 근육질의 화법을 구사하는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얻기 위한 한·일 정상의 아부 외교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불편하다. 함포 제국주의의 기억이 흐릿해지자 이번에는 관세 제국주의의 공세 속에 세상이 흉흉하다. 강대한 서양국가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가로 놓인 불평등 구도는 백년이 지나도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윤상인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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