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소리꾼' 이자람은 이미 확고한 경지에 오른 명창이자, '아마도 이자람밴드'를 이끄는 록커이며, 뮤지컬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이다. 그런 그가 연극 '프리마 파시(Prima Facie)'로 생애 첫 1인극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다소 불확실한 지점에 세운다는 사실이 신선하다.
'프리마 파시'는 법률 용어로 '첫인상에 의하면' 또는 '표면상으로(At first sight)'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어떤 주장이 반박되지 않는 한 사실로 인정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처음부터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극은 성폭행 사건 가해자 변호를 전문으로 하며 승승장구하던 일류 변호사 테사 엔슬러가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서 겪는 시스템의 부조리와 절망을 120분 동안 밀도 있게 그려낸다.
이자람은 초안 9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대본의 대사와 법률 용어를 소화한다. '이자람의 연기 차력쇼'라는 관객들의 평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소리꾼인 이자람은 때때로 이야기꾼으로서, 때로는 사건의 당사자로서, 때로는 세상을 향해 절규하는 피해자로서 옷을 바꿔입으며 이 작품 속 테사 엔슬러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이자람은 이 작품에 끌린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작품이 어려울까, 그리고 새로울까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한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이번 도전은 단순히 연기 영역 확장을 넘어선 자기 성찰의 과정이다.
그는 이 도전을 두고 소리꾼으로서의 명성을 스스로 흔들어 보는 행위에 비유했다. "소리꾼 이자람이 다시 세우는 과정은 판소리라는 작은 월드에서 명성에 다시 지진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라며, "네가 서 있는 땅이 진짜 단단하냐고 묻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1인극 '프리마 파시' 무대에서 이자람은, 8시간 '춘향가' 완창으로 관객을 장악했던 소리꾼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다만, 판소리 발성은 의도적으로 지우려 노력했다.
"사람들이 '판소리 소리꾼으로서 남다른 리듬감을 보였다'라고 칭찬할 때, 오히려 이자람은 '내가 소리꾼이 아니었으면 배우의 연기로서 칭찬받았을 텐데 하는 순진한 마음도 있다"라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이 작품은 테사 엔슬러가 법대 입학부터 변호사 생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변화하는 짧지 않은 과정을 담지만, 정작 극에서는 최소한의 옷과 머리 묶음만으로 테사의 변화를 표현해야 한다. 이자람은 오직 대본 전달에만 집중한다.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 단 한 글자의 애드립도 없다.

그는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자의식'을 꼽았다. "내가 지금 템포가 좀 어그러졌나 하는 식으로 '훈련된 나의 몸 상태에 신경 쓰는 게 오히려 자꾸 저를 방해하는 것"이라며, "그런 자의식을 최대한 없애고 이 말들이 잘 흘러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극 중 테사가 자신이 신뢰했던 법의 세계로부터 공격받는 상황을 묘사하며, 이자람은 감정의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세워놓은 허들이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서는 이 과정을 제가 하려는 테사"라며, 이는 곧 자신의 도전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작품이 성폭력이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그는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확고한 소신을 밝힌다.
"누군가 뜨거운 차를 준비해 줬는데, 손님이 안 마신다면 그것은 안 마시는 것이에요. 섹스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옷을 다 벗었어도 '나 지금 하고 싶지 않아' 하면 그건 안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자람에게 이 작품은 비단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가 이것을 다 뒤집을 때가 있다"며, 테사가 겪은 '젠더 폭력' 이슈를 넘어 '삶을 전복시킬 만한 사건과, 그 후 궁극적으로 더 나아가 저 앞을 보게 되는 과정'"에 집중하여 해석했다고 밝혔다.
'프리마 파시'는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하고, '존재하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닌 '법적인 진실'이 인정받는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의 지점을 파고든다. 일각에서는 '논쟁적이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이자람은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에 놀랐다."면서도 "토론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의미들을 발생시키는 것에 계속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자람은 이 경험을 통해 배우로서 성장 중이라고 했다. 이자람은 이 공연이 "그냥 어른이면 다 봤으면 좋겠다"며, "이 작품으로 인해 계속 이것을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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